나는 오늘 군산에 간다. 군산을 생각하면, 눈앞에는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떠오른다. 길가에 구름송이처럼 화사하게 피어난 벚꽃은 보는 이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월명 공원의 벚꽃은 시내보다 일주일 정도 늦게 피는데, 그 꽃들은 길가를 빗겨 산 위 나무들 속에서 피어 그런지 그 자태가 한결 맑고 고우며 마치 부끄러운 새색시 속살 같이 뽀얗다. 아득하게 하늘 가득 피어있는 꽃잎들이 나풀거리며 쏟아지는 모습을 보면 왜 그렇게 슬프고 가슴이 아리던지……. 어떤 작가는 그 모습을 보고, ‘하늘은 흩날리는 꽃잎으로 아슴해지고 사람들의 심경도 혼미해진다’고 했다던가.
군산 가는 길엔 설레임과 함께 조금은 가슴을 누르는 듯한 이름 모를 애처로움도 함께 따른다. 천지에 가득했던 꽃잎들은 어디론지 사라지고, 오월 하순경의 군산은 신록에 휩싸여 있다. 연푸른 초록에서 짙푸른 녹색으로 치장한 나무들은 어느새 꽃잎들을, 그 꽃들의 세월을 잊고 있다.
군산의 오월은 채만식의 ‘탁류’가 시작되는 계절이기도 하다. 군산은 100여년 전 부근 평야지대의 쌀을 수탈하기 위해 일본에 의해 개발된 항구다. 항구 주변에는 쌀을 쌓아두던 창고며 ―그 일대는 지금도 쌀을 저장하는 곳이라는 뜻으로 장미동(藏米洞)이라 불린다―, 쌀을 사고 팔던 미곡상, 현물없이 쌀 시세의 등락을 이용하여 쌀을 사고 팔던 미두장, 그곳의 돈이 모이던 은행이 있었다. 쌀이 나는 땅과 땅에서 나는 쌀과 쌀을 팔아 생긴 돈이 모두 이곳을 통해 일본으로 흘러들었다.
먼저 채만식문학관이 있는 금강하구둑을 향했다. 금강 주변에는 갈대가 푸르고, 이미 꽃잎을 떨군 유채의 씨앗이 영글고 있다. 그 곁엔 행복해 보이는 부부들, 다정한 연인들, 한가로운 노인들, 개를 데리고 노는 아이들도 보인다. 가끔 하얀 갈매기들이 강 위를 스칠 듯이 날았다 솟아오르곤 하는 모습이 보였다. 문학관은 하구둑에서 군산 시내 쪽으로 가는 길에 있다. 군산 시내에 있던 문학관을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강가에 외롭게 덩그러니 서있는 문학관은 망각의 강에서 버티고 있는 작가 채만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채만식의 ‘탁류’는 금강 미두장에서 시작되고 있다. 문학관에서 서쪽을 보면 건너다 보이는 강의 에돌아가는 부분이 미두장이 있던 째보선창이다. 오월 오후 째보선창의 여객터미널에는 크고 작은 배 몇 척이 떠 있다. 바다쪽으로는 횟집과 생선 가게가 즐비하다. 그 옛날 붐볐던 미두장은 이제는 활력을 잃었으나, 쌀을 저장하던 창고들 중 몇 개는 가게나 볼링장 따위로 개조되고, 몇 개는 아직도 옛 모습을 간직한 채 남아 있다.
눈앞엔 문득 강가로 뻗친 찻길과 방정맞은 기관차 소리, 내숭스럽게 낮은 소리를 내는 기선 소리 사이로 낮은 돛대를 단 크고 작은 목선들이 빽빽이 몰려들고, 준설선이 저보다도 큰 크레인을 무겁게 들먹거리며 시커먼 개흙을 파 올리던 광경이 펼쳐지는 듯 했다. 칠산바다에서 잡아온 조기며 은빛 싱싱한 준치가 번쩍이는 사이로 번지는 사공들의 아우성이며, 장사꾼의 셈하는 소리, 지게 진 짐꾼과 광주리를 인 아낙네들의 분주한 발걸음 소리도 들리는 듯 했다.
‘오늘’이 아득했던, ‘내일’이 없던 사람들이 인생을 걸고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던 미두. 마지막 밑천마저 날리고 더 이상 잃을 것도 걸을 것도 없으면서 미두장을 서성여야 했던 초봉의 아버지 정주사. 자신의 무능함 때문에 죽고 싶었고, 죽고 싶으면서도 죽지 못하고, 그저 죽고싶은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그. 입만 가졌지 손발이 없던 무능했던 아버지.
무능한 아버지 때문에, 소심했던 정주사의 큰 딸 초봉은 사랑보다는 돈을 쫓고 돈을 찾아 남자를 쫓았다. 그러나 가족을 위해 쫓았던 그 돈도 남자도 초봉을 배반했다. 초봉의 남자들인 고태수, 박제호, 장형보는 돈이 있나 싶으면 돈이 없고, 사랑이 있나 싶으면 사랑이 없고, 인정이 있나 싶으면 인정도 없었다. 마지막까지 믿었던 첫사랑마저 잃고,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죽음을 동경하던 초봉.
형보가 딸 송희를 학대하던 모습을 보고 두 눈이 벌컥 뒤집히고 분기가 치솟다 못해 독기가 오른 그녀. 갑자기 살기스럽게 포효하며 형보를 모질게(?) 때려 죽인다. 이제까지의 수동적이고 음전했전 모습에 비하면 그녀의 행동은 조금 엽기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가 삶의 나락으로 밀어붙이는 비정한 숙명에 분노하여 온 힘을 다하여 마지막으로 몸부림쳤던 순간이다. 그리고 그 순간 돈의 비정한 흐름에 섭쓸려 사랑도, 청춘도, 희망도 잃고 그녀는 그 흐름과 한 몸이 되어버렸다. 강물은 초봉의 깨어진 꿈과 삶이 자신 속에 묻혀있음을 아는지? 강물은 무심하게 흐르고 있다. 강물에는 바닷물이 섞인 듯, 강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끈적거리는 습기와 비린내가 섞여 있다.
선창가에서 벗어나 시내로 들어서니, 그 옛날의 화려했던 큰길과 상점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그러나 화려함은 빛을 바래고, 지금은 그 거리며 가게들이 왠지 좁고 옹색해 보인다. 정주사가 한참봉을 찾아 걷던 개복동과 둔뱀이(지금의 둔율동) 사이의 콩나물 고개를 지나 월명공원에 오르니, 무성하게 오른 잎들 사이로 철늦은 철쭉이 한 두 점 붉다. 철쭉이 푸르른 사이, 강물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백릉채만식선생문학비’가 서 있다. 내려다보니, 하염없이 흐르는 강 끝에 바다가 있다. 그 강 끄트머리에서 작가 채만식은 이 나라를, 그곳에 살던 민초를, 어여쁜 초봉을 휩쓸고 간 식민자본주의의 거대한 발자취, ‘탁류’를 읽었다.
월명공원을 내려와 바다 쪽으로 향하니, 그곳에선 군장산업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멀리 중국을 향하는 바다는 트럭들이 들이부은 흙으로 몸을 뒤척였다. 백제인들의 발걸음이 잦았던 바다. 멀리 보이는 대륙엔 그들의 못다 이룬 꿈과 포부가 아직도 퍼렇게 살아 있는 듯 하다. 느리지만 도도하고 양양하게 흐르는 금강. 간간이 비행장에서 떠오른 비행기들이 커다란 은빛 새처럼 낮게 날면서 굵은 울음소리를 냈고, 트럭들도 질세라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며 달렸다. 강물은 여전히 무심하게 바다를 향해 흐르며 몸을 섞고 있다.
채만식의 문학세계
1902년 지금은 군산시로 통합된 임피면에서 태어난 작가 채만식은 다양한 장르에 걸쳐 300여편이 넘는 글을 남겼다. 그의 문학 작품을 연구한 글이 500여편을 넘는다는 사실은 채만식이 한국현대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대변해준다.
그는 뛰어난 글쓰기의 장인이다. 그는 소설과 희곡, 수필, 동화, 시나리오, 방송대본 등 다양한 장르에 속하는 글을 썼다. 그의 작품에는 ‘놀보’나 ‘심청’ 같은 고전소설의 인물 유형이 등장하며, 판소리나 민담 형식이 전라도 방언과 독특한 부호들과 어우러져 사용되었다. 그의 글에는 전통적 글쓰기와 현대적 글쓰기, 그리고 구술적 글쓰기와 문자적 글쓰기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채만식의 문학에는 비록 현실을 변혁하려는 정열은 미약하지만, 정확하게 진단하고자 하는 이성과 판단이 있었다. 채만식은 사회주의에 우호적이면서도 사회주의자는 아니었고, 남한의 자본주의 체제를 선택했지만 비판적 시각을 유지했다. 그러한 태도 때문에, 그는 사회의 권력구조에 민감했던 당시 문단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바로 그 거리가 있었기에, 그는 당대 사회를 정확하게 진단하는 ‘태평천하’나 ‘탁류’, ‘치숙’, ‘미스터 방’, ‘논이야기’, ‘소년은 자란다’ 등을 쓸 수 있었다.
◎ 채만식의 대표 작품 : 소설 ― ‘태평천하’, ‘탁류’, ‘치숙’, ‘논이야기’, ‘미스터 方’, ‘소년은 자란다’ / 희곡 ― ‘제향날’, ‘당랑의 전설’, ‘심봉사’ / 시나리오 ―‘무장삼동’
/윤영옥(전북대 전라문화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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