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의 중심에서 일해온 활동가들의 담론이 쏟아진 현장은 뜨거웠다. 11일 오후 3시부터 시작된 ‘참여정부 지역문화정책과 문화중심 도시’를 주제로 한 전주 지역문화대토론회에 참가한 전국의 문화활동가들은 지역문화의 현실과 괴리된 참여정부의 지역문화정책에 실랄한 비판을 가하면서도 문화분권의 실천을 향해가는 정책에 진지한 애정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백가쟁명(百家爭鳴). 이론과 실천의 경계를 아우르며 지역문화를 지켜온 활동가들이 풀어놓은 폭넓은 담론은 지역문화의 새로운 활력을 예고했으며, 전통문화중심도시 만들기에 나선 전주는 문화활동가들의 새로운 관심으로 부상했다.
11일과 12일, 이틀동안의 일정으로 열린 전주 지역문화대토론회는 전북민예총(회장 최동현)과 한국문화정책연구소(이사장 김학민)가 함께 주관했다. 본격적인 토론이 이루어진 11일 각 분과별 토론의 현장을 옮겼다.
"진보적 정책 반영에도 현실과는 괴리감 많아"
‘높은 기대치와 미미한 체감지수’.
참여정부의 문화정책에에 대한 1분과 토론회 패널들의 공통된 평가다. 이들은 참여정부의 대표적 문화정책인 지역문화예술위원회 설립과 운영, 지역문화진흥법 제정, 문화행정협의 설치, 정책 및 사업에 대한 평가제도 등 그동안 진보적 문화예술들이 제시한 정책들이 대부분 반영됐으나 정책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있다고 평가했다.
충북대 김승환교수(충북민예총회장)는 이러한 참여정부의 지역문화정책을 ‘머리는 낭만적이고, 몸통은 현실적이며, 다리는 수구적이다’고 비유했다. 그는 특히 현 정부 정책 이론의 틀이 진보단체에서 제공된 것이어서 이를 지지할 것이냐 비판할 것이냐의 딜레마에 빠져있다고 덧붙였다.
윤치원 마창민예총문화정책연구소장은 더욱 강하게 참여정부의 지역문화정책을 비판했다. 지역문화정책을 서울관료들이 일방적으로 결정 집행하는 현재 구조에서는 정책 경쟁력을 가질 수 없으며, 지역문화예술 당사자들은 참여정부의 문화정책에 ‘아는 바 없다’거나 ‘구체적이지 않다’고 평가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김창수 인천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은 지역간 문화불균형과 문화의 획일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수립 과정에서 지역 문화인들이 소외돼 지역문화의 현실을 생생하게 반영할 수 있는 논의구조가 안 된 점을 질타했다.
이정덕 전북대교수도 같은 맥락에서 문화분권 측면의 문화관련 각종 위원회가 서울 중심으로 짜였다고 지적했다. 이와함께 현 지방의 문화적 문제는 문화 인프라보다 문화의 생산과 소비의 불평등에 있어 이부분을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진창윤 전북민미협회장은 지역공무원과 유착돼 관료화 된 인맥구조로 문화상층부가 구성된 상황에서, 제도는 변화하는 데 비해 추진주체가 변하지 않아 피부로 느끼는 문화예술변화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참석자들은 지역간 문화네트워크 구축을 강조했다. 서영수 부산문화관광축제조직위원장은 범문화운동의 내부혁신과 전국적 네트워크 정비를 제안했고, 이성호전주시정발전연구소 연구원은 종속적 의존적 개발에 매달려온 그동안의 관성을 분권정책으로 일거에 해소하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김영기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생활문화운동 통해 시민 참여 생활화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전문인력 양성 불가피 중앙 집중지원 아쉬워"
지역 문화예술 진흥을 위해서는 정책개발 주체로서의 민관 가버넌스 구축, 지역 자생력을 담보하는 재정 확립, 문화예술진흥기구간 네트워크 활성화 등이 그 과제로 제기됐다.
‘지역문화예술진흥법제정 전망과 과제’(좌장 김기봉 민예총 지역문화예술위원장)를 주제로 한 2분과 토론에서는 문예진흥원의 문화예술위원회 전환을 주요 골자로 한 문예진흥법 개정안에 따라 최근 입법 논의가 제기되고 있는 '지역문화예술진흥법'에 관한 다양한 의견이 논의됐다.
패널들은 지역간 문화 편차를 좁히는 지방 분권을 기조로 내걸고, 문화예술정책 전반의 '중앙과 지방의 역할 분담'과 지역 문화의 특성을 살린 '민관 참여형 정책개발'에 관해 인식을 함께 했다. 하지만 문예진흥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극명히 엇갈리는 입장차를 보였다.
김보성 경기문화재단 기전문화대학장은 문예진흥법 개정안이 담고 있는 문화재단 설치와 관련,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문화재단을 설치·운영하고 있다”면서 "정책 준비 과정에서 관련 입법 취지와 홍보가 생략되는 관행이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문화인력이 중앙에 집중된 현실에서 지역내 전문인력 양성은 더욱 절실하다”고 밝힌 김학장은 "지역 문화예술계의 종사자에 대한 재교육이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박두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정책위원은 문예진흥법 개정안 중 지역문화와 관련된 내용을 조목조목 분석했다. 박 위원은 "국가와 자치단체가 필요한 재원을 적극 조달하는 의무를 규정한 문예진흥법 개정안은 문화재정 확보을 위한 법적 근거를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선언적 의미를 담고 있다"며 "지역문화 진흥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문예진흥기금 모금제도가 폐지되면서 지역 문화예술분야에 대한 안정적 사업지원이 어렵게 되었다”고 밝히고, 중앙 집중 지원을 개선, 지역 지원비율을 높이는 방안을 과제로 제시했다.
이용관 부천문화재단 예술경영전문위원은 '문예진흥법만으로는 다양한 문화관련 이슈들을 담기에는 부족하다'며 지역문화예술진흥법의 필요성을 강조, 공공성과 전문성을 담보한 지역문화예술위원회 구성 등을 법안에 포함시킬 것을 제안했다.
제2분과 토론에는 김선태(전북민예총 사무처장), 문병학(전통문화센터 기획실장), 서준호(강원민예총 사무처장), 이형호(문화관광부 전통지역문화과 서기관), 홍승명씨(대전민예총 사무차장) 등이 패널로 참석했다.
"지역에서의 노력 없이 중앙 자원의존 안좋아"
문화관광부는 올해초 2조원의 예산이 지원되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로 광주를 선정했다. ‘전주전통문화중심도시’와 관련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문화중심도시의 추진 정책의 철학과 비전’은 우리 지역에서도 상당한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주제였다.
전주한옥생활체험관에서 열린 제3분과의 토론회는 광주문화중심도시 추진과 관련한 다양한 논의가 있는 자리였다.
패널들은 광주를 아시아의 문화중심도시로 만들겠다는 계획은 더이상 광주지역만의 문제가 아닌, 국가적 사업으로 시각을 넓혀야 한다는 데 우선 동의했다.
또 ‘문화중심도시’의 개념을 명확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인배 민예총 기획실장은 “‘문화가 도시의 중심적인 기능을 하는 도시’라는 의미의 문화중심도시가 ‘(주변)문화의 중심인 도시’로 해석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문화중심도시를 위한 인프라 구축을 두고 패널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아시아 문화의 허브로서의 역할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국립아시아문화의전당’ 건립 계획은 문화중심도시 프로젝트의 핵심.
윤재철 광주시 문화수도추진지원단장은 “고속도로가 경제 성장을 일궈냈듯,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복합문화센터는 각종 제도와 함께 광주를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로 특성화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라며 문화 인프라 구축에 대한 큰 기대를 내비쳤다. 반면, 전고필 광주북구문화의집 상임위원은 “문화기반 인프라 구축만이 광주문화수도의 관건이라는 일부 주장은 시설이 부족해 문화중심 도시에 이르지 못한 것처럼 보여진다”며 “문화중심도시에 대한 논의 구조가 시민사회로 확산되고, 문화중심도시를 이끌어갈 인력에 대한 투자가 더욱 중요한 때”라고 말했다.
김병수 공공작업소 심심 소장은 “광주문화중심도시는 철학적·실천적 내용 보다 자원 배분의 의미가 큰 것 같다”며 “지역 자산을 가지고 지역에서 일으키려는 노력 없이 지나치게 중앙의 자원에 의지하는 것은 좋지않다”고 제기했다.
광주에 대한 인적·물적 투자가 집중됐을 경우 발생할 ‘문화적 쏠림’ 현상과 기획 의도대로 광주문화중심도시가 다른 지역이 참고할 수 있는 모델로 성장할 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다. 따라서 모델 개발 단계부터 여타 지역의 지역문화활성화와 함께 할 수 있는 네트워크 작업이 필요하다고 패널들은 밝혔다. 김지원 광주전남문화연대 사무국장, 박찬국 공공미술·밀머리미술학교 디렉터, 장용일 한국문화정책연구소 도시환경분과위원장, 조진형 광주민예총 사무처장 등이 패널로 함께 참여했다.
"한옥마을 생활공간 보존 무형 문화에 먼저 주목"
‘전주는 전통문화중심도시로서의 위상이 가능한가.’
전주한옥생활체험관 대청마루에서 열린 제 4분과 주제 ‘전주 전통문화중심도시 가능성과 역할 및 전망’. 국내 문화전문가들이 전주와 전통문화도시의 필요충분조건을 파악하고, 컨텐츠를 제시하기 위해 마련된 이 자리는 전통문화도시의 개념을 검토해 전주와의 관계를 모색하고 전통문화중심도시로서의 가능성을 객관화시켰다. 특히 패널들은 판소리와 비빔밥, 한옥마을, 전주대사습, 서예, 한방, 조선왕조 등을 앞세워 전주와 전통문화도시를 연결시키는 것에 동의, 전주와 전통문화의 관계는 더 밀접해졌다.
전주시의 전통문화중심도시는 가장 한국적인 문화도시. 전주시가 전통문화중심도시로 성장하려는 이유를 경제적 가치를 통한 삶의 개선으로 꼽은 문화평론가 문윤걸씨는 “한옥마을은 전통과 현대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생활 속에 녹아있는지 잘 보여준다”고 소개했으며 의견을 함께 한 열린문화연구회 김순석 대표는 “한옥마을은 실제 생활공간으로서 유지·보전돼야 하며, 특히 유형의 문화보다 무형의 문화에 먼저 주목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전주의 전통문화찾기에 대한 구체적 논의에 대한 요구와 조언도 이어졌다.
문화기획자 박명구(충북민예총 회원)씨는 “전주와 전주의 전통자원이 다른 도시보다 비교우위에 있는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역사와 전통을 거론하는 다른 도시들에 비해 그 우수성이 두드러지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도시 마케팅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실려 섣불리 진행하면 돌이킬 수 없는 낭패를 볼 수 있다”고 밝힌 그는 “좋은 아이템이 있다해도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준비되어 있는가가 보다 중요한 문제”라고 조언했다.
“전주 전통문화중심도시는 문화분권을 실천하는 모델이 되어야 한다”고 주문한 지역문화네트워크 박상문 공동대표는 하드웨어 구축보다는 문화인력 양성의 소프트웨어 구축과 시민의 주체적 참여를 강조했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 큐레이터 유대수씨는 “광주와 문화, 부산과 영상, 경주와 문화재, 춘천과 마임 등 다른 도시와의 상대적 차별성을 견제하며 전주시가 전통이란 화두를 조급하게 꺼낸 것은 아니냐”며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이날 토론회는 패널 예정자였던 구모룡·권두현씨의 불참으로 지역외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을 기회가 줄었지만, 20여명의 청중이 참여하는 등 높은 관심을 보였다.
최기우·안태성·도휘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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