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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향기]내 마음속 그대 있음에

 

설레임으로 또 하나의 아침을 맞으며, 물안개 피는 냇가를 향해 걷는다.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할머니를 할아버지가 뒤에서 밀고 가는 정겨운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침 산책길에서 가끔 마주치지만 오늘도 코끝이 찡하다. 나란히 걷고잇는 남편에게 눈길을 보낸다. 남편도 무언의 눈길을 준다.

 

노부부를 볼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예전에 같은 학교에 근무했던 P교사이다.

 

어느 날 우연히 그의 삶을 엿볼 수 있엇다. 그는 3년 넘게 중풍으로 고통받는 아내를 위해 일반 병원과 한방 병원을 넘나들며 지성으로 간병했다. 자연히 집안 살림을 도맡게 되었다. 전에는 집에서 살림만 하는 사람이 무슨 허리며 다리가 아프냐고 아내에게 핀잔을 주었다, 직접 살림을 맡아보니 주부의 일이 힘들고 어려움을 체험했다.

 

아내의 수고와 땀과 피와 눈물을, 너무나도 당연시하고 무시해버렸던 일을 뉘우쳤다. 어려운 일은 시장에 가서 장을 보는 일이다. 썩은 생선을 몇 번 산후에야 생선고르는 법을 알게 되었다.

 

가품이 들면 살고 있는 집의 지대가 높아서, 새벽 한 시가 되어야 겨우 수돗물이 나왔다. 물 받고 빨래하다 보면 뜬눈으로 밤을 지새고 출근하기도 한다. 아내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의 인생이 송두리째 갇혀 있는 듯이 보여도, 삶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묵묵히 교단에 서서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치는 P교사의 인고와 사랑 앞에 숙연해졌다. 집안일, 자녀 뒷바라지, 아내 병간호에 승진도 뒤로 미루어야 했다.

 

새로운 시각으로 그를 바라보게 되었다. 아내를 지성으로 돌보는 그의 모습 속에 고통과 아픔이 있지만, 자기를 뛰어넘는 숭고한 사랑과 진실이 있다. 용기를 가지고 주어진 길을 책임지며 부단히 걸어가는 한 사람의 참 모습이 아름답다.

 

"나 XX은 XX을 아내로 맞아 내게 있는 모든 것과 부귀와 영화와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당신곁에 있겠습니다. 언제나 사랑하고 아낄 것을 맹세합니다.”

 

결혼식에서는 신랑 신부가 함께 맹세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쉽게 망각한다. 요즈음에는 어려울 때나 아플 때는 곁에 있지 않고 약속을 소홀히 여기며 떠나 버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노인 부부를 만날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된다.

 

-주님 아직도 제게 주실 허락이 남았다면 주님께 한 여자가 해드렸듯이 눈물과 행운의 미끈거리는 검은 모발로서 저도 한 사람의 발을 말없이 오래오래 닦아주고 싶습니다.-

 

김남조의 '아침기도'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부부의 인연을 내 마음의 작은 서랍 속에 소중히 간직하며 그대 있음에 삶이 풍요로웠음을 깨닫는다.

 

/장정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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