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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말론 브란도와 하길종

 

일요일 밤, 교육방송의 한국영화 걸작선을 종종 본다. 대개 한 30년 전의 영화들이다. 그런데 이 '걸작'을 함께 사람들은, 그 때 영화가 이 정돕니까 하는 볼멘 소리를 늘어놓는다. 그럴 때, 나는 마치 세상 다 아는 의사처럼, 천만관객시대의 눈으로 보지말고 영화를 만든 그 시대의 눈으로 보라고 점잖게 충고한다. 그렇지만 나 역시 허전함을 지울 수는 없다. 다 까닭이 있을 것이다. 예술품이 그 시대성을 초월하기 쉽지 않은 그런 이유 말이다. 제작풍토 또 독재정권이 보여준 노골적인 표현의 침해 등은 최근 임권택의 <하류인생> 이 슬쩍 흘리지 않던가.

 

엊그제 일요일 밤, 나는 이 걸작선(?)중의 하나인 <월하의 공동묘지> 를 보지 않고 sbs에서 방영한 영화사의 전설 <대부> 를 보았다. 말론 브란도라는 대배우의 사망에 맞추어 급히 편성했으리라. 32년 전 필름이지만 부러 그 시대의 눈 아닌 오늘의 눈으로 봐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니노 로타(영화 <길> 과 <로미오와 줄리엣> 의 음악도 이 양반 작품이다)의 부드러운 음악에 이어지는 살육과 세례장면의 대비 등이 볼 만했다. 살아남기 위해 죽이는 이탈리아 출신 이민들의 서사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지금은 세상에 없는 말론 브란도의 지친 노거구가 주는 아우라가 가슴에 와 닿았다. 그렇다. 걸작은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삼십 년 전 이리극장에서 본 <대부> . 그러나 이 갱 영화 초반의 화려한 결혼식 장면은 중학생에겐 너무 지루했다. 나는 폭력의 엑기스가 필요해서 극장을 찾았는데 말이다. 장동휘와 박노식의 가죽장갑 결투에 익숙한 내게 톨게이트의 기관단총 벌집 장면이나 잘라진 말목 장면 등 몇몇의 잔혹한 장면은 얼마간의 욕구를 충족해 주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뒤, <디어 헌터> 의 결혼식 장면이 지루하지 않게 되었을 때, <대부> 가 가지는 울림의 깊이를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말론 브란도가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거부했다는 사실(영화계가 인종차별을 했다는 이유) 등은 그의 작품을 빼놓지 않고 보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또한, 전쟁의 도덕적 모순과 그 악몽을 이야기한 <지옥의 묵시록> 에서의 악마성과 철학적 깊이를 가진 그 악당 커츠 대령 말론 브란도를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위장약을 찾아 먹으며 새벽 세시까지 진행된 영화 내내 말론 브란도를 더빙한 성우의 목소리는 참으로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갱으로의 강퍅함이 아닌 업을 이룬 사람만이 갖는 말론 브란도의 위엄과 무게를 마치 김인문 폼잡는 식의 목소리로 처리하다니. 지친 대부의 느린 탁성에는 지는 해의 위엄과 아름다움이 있었을 터인데, 참으로 안타까웠다.

 

폭력성을 기반으로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탈리아 이민사를 다룬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생각한 인물이 하길종이다. 1941년생, 이 불운한 천재는 미국 UCLA 대학원에서 F. 코폴라와 함께 동문수학한 후 한국에 돌아와 <한네의 승천> 이나 <바보들의 행진> 등을 만들었다. 걸작은 아니라 해도 추억의 영화만은 아닌 영화들이다. 불우한 땅과 시대를 만난 그는 <대부> 를 보면서 절망하며 울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하여, 나는 요절한 하길종의 눈으로 <대부> 를 보며 맘속으로 울었다. 말론 브란도 선생, 저 세상에서 하길종 감독을 위로하시라.

 

/신귀백(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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