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등록으로 고구려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때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중국 고구려 유적지 탐방단> 에 합류한 것은 큰 행운이었다. 심양에서 압록강 건너 신의주가 마주 보이는 단동을 거쳐 환인, 통화, 집안, 백두산, 두만강 유역 등 그 옛날 고구려인들이 말타고 누볐을 대평원과 험준한 산길을 무더위가 절정이던 지난 16일부터 버스와 야간열차로 강행군 했다. 중국>
비록 1주일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고구려의 숨결은 왕성과 왕궁터, 지워지지 않은 비문, 찬란한 고분벽화 등에서 천년 세월을 거슬러 그대로 숨쉬고 있었다.
그동안 고대한국의 지배지역에 관한 토론이나 중국 내 고구려 문화유산 및 고구려사 왜곡문제 등에 관한 주장 등에 중국공안당국에서 민감하게 반응해 온 데다, 시기적으로 고구려 유적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직후여서 대통령자문기구인 민주평통의 유적지 탐방은 중국측에 불필요한 오해를 야기시킬 수 있다는 당국의 주의가 있었지만 어려움은 없었다.
역사를 전공한 학자도 아닌 필자로서는 그간 발표된 연구논문과 안내자의 설명을 참고할 수 밖에 없었지만, 직접 보고 느낀 고구려유적은 세계유산위원회의 평가대로 “인간과 자연의 조화가 특징적”이었고, 광활한 평원을 주름잡으며 독자적인 문명권을 형성한 조상들의 활달한 기상과 지혜, 예술적 감각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39살의 나이로 눈감을 때까지 광활한 영토를 확장한 광개토대왕이나 수백만의 수나라, 당나라 군사를 물리친 막강한 군사력, 세계 최고의 생동감 넘치는 벽화예술을 꽃피운 예술성 등 고구려에 대한 막연한 자부심과는 달리 우리는 고구려를 너무 모른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고구려사는 국내 기록이 부족한 탓에 중국측 자료를 많이 이용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고구려는 자체의 사관을 두고 역사를 기록한 나라였지만, 당나라는 고구려를 멸망시키면서 <유기> 100권, <신집> 5권 등 기록을 전부 없애버렸고, 각종 유물들도 대부분 파괴했으며 남아있는 자료들마저 소홀히 관리했거나 의도적으로 평가절하했다. 또 남아있는 기록들은 고구려에 대한 적개심으로 쓴 것이 대부분이다. 다행히 705년의 역사와 당대 최고의 문명을 꽃피웠던 고구려의 숨결은 출토되는 각종 유물과 천년 세월을 버텨온 산성의 돌 무덤이에서 찬란하게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신집> 유기>
북한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중국의 고구려 수도, 왕릉, 귀족묘는 오녀산성, 국내성, 환도산성 등 왕성 3곳과 태왕릉, 장군총 등 왕릉 13기, 각저총, 무용총, 장정 1·2·4호분 등 귀족묘 26기와 광개토대왕비 등 43건이다.
환인에는 주몽이 고구려의 발상지로 삼은 졸본성터(흘승골성)와 비류수(혼강), 주몽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미창구장군묘 등 초기 고구려 유적이 산재해 있다. 2대 유리왕 때 졸본성에서 수도를 옮겨와 20대 장수왕까지 고구려의 중심지로 번영했다는 현재의 집안에는 국내성, 광개토대왕비와 왕릉, 거대한 화강암을 잘라 7층으로 쌓아올린 동방의 피라미드 장수왕릉, 고구려인의 생활상과 신화세계를 보여주는 고분벽화 등 많은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어 융성했던 시대의 발자취를 보여주고 있다. 주몽이 나라를 세우고 최초로 쌓은 성이자 첫 수도이기도 한 환인의 흘승골성은 현재 오녀산성으로 불리우고 있으며, 성터로 오르는 중국인 탐방객들이 산성 입구에서부터 무더위에도 줄을 잇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오녀산성의 남 서 북벽은 1백여 미터나 되는 어마어마한 절벽으로 성벽을 쌓지않고 자연요새를 이루고, 해발 820미터의 산 꼭대기에는 남북 1천미터에 동서 3백미터의 넓은 평지가 있으며, 물이 나오는 샘과 작은 못이 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으나 물은 마른 일이 없어 현지인들은 이 못을 天池라고 부른다. 꼭대기 맨 남쪽 끝에는 장수가 군사를 지휘했다는 장대가 있는데 혼강과 환인 시가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이번 문화유산에서는 빠졌지만 발해의 두 번째 수도였던 중경 현덕부 소재지 西古城은 연길에서 서북쪽 50여 키로 떨어져있는 화룡시 두도벌에 자리잡고 있다. 성의 남쪽에는 두만강 지류인 해란강이 평야 사이로 흐르고 있는데 1996년 길림성에서 성터를 지정 보호하고 있다.
고구려 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록 이후 중국의 관영 언론들이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정권”이라고 억지를 펴고, 중국 외교부가 인터넷 홈페이지의 한국 소개 중 고구려를 삭제하는 등 속좁은 짓을 하고 있으나 그렇다고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가 지워지거나 자기네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너무 자명한 일이다.
당장은 중국과의 역사갈등을 겪고 있지만, <세계유산> 이 “인류에 대한 뛰어난 가치”를 주요 요건으로 하고 있는 한, 이번 세계문화유산 등재로 북한이나 중국 모두 고구려 유적에 대한 접근을 봉쇄하던 기존의 조치를 완화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우세하다. 세계유산>
우리 역사의 뿌리는 하나이다. 그들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중국을 속좁다고 탓만 할 게 아니라 이제 우리도 7천만 한국인이 힘을 모아 고구려사를 신화가 아닌, 한민족의 살아있는 역사로 꽃피울 수 있게 학술적인 연구와 논리 전개는 물론 치밀하고도 적극적인 홍보전략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조상이 확보했던 영토는 지키지 못했을망정 그 문화와 역사만이라도 살려야 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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