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수장이’ ‘숲 속의 대장간’ ‘섬 마을의 전설’ ‘크리스마스 송가’. 1967년부터 1995년까지 28년동안 초등학교 4·6학년 국어책에 수록됐던 아동극본이다. 이 낯익은 희곡들은 당시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무대나 대사 등 연극이란 장르를 처음 경험하게 했다. 저자는 50년이 넘는 세월동안 아동극을 쓰고, 무대에 올리는데 바쳐온 아동극작가 주평씨(75·미국 샌프란시스코 거주)다.
“아동극은 아이들에게 우리말의 올바른 화법을 전합니다. 또 다양한 장르가 모두 집결된 종합예술이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예술 각 장르를 이해하는 좋은 교과서가 될 겁니다.”
그는 오는 10월 전주신아출판사(사장 서정환)에서 ‘주평 아동극 전집’을 발간하며 삶의 한 결실을 맺는다. 지난 1976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뿌리를 내렸지만, 그곳에서도 아동극단 ‘민들레’와 노인극단 ‘금문교’, 소극장인 ‘북가주 노인극장’ 등을 운영하며 무대극을 이끌어 온 그는 90년대 중반 미국에서 교환교수로 활동했던 백제예술대 김동수 교수를 만나면서 전주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지난 2002년부터 ‘월간 소년문학’에 세계명작동화 동극을 연재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신아출판사에서 국내 아동극의 기틀을 세운 작가의 업적을 인정해 전집 발간에 발벗고 나서게 됐다.
지난 7월 고향인 경남 통영시의 초청으로 재미 아동극단 ‘민들레’ 단원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 가족뮤지컬 ‘콩쥐팥쥐’를 올린 주씨는 지금 통영과 전주를 왕래하며 교정작업에 한창이다. 모두 1백80여 편의 작품 중 1백17편이 실릴 전집은 10권 분량. “생각하지도 못한 귀한 선물을 전주에서 받게 됐다”며 전주와의 각별한 인연을 소개한 주씨는 “전주는 이제 고향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조국에 돌아와 보니 교실에서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메마른 정서를 가진 어린이가 어른이 돼 이 사회를 움직인다고 생각해봐요. 얼마나 소름 끼치는 일입니까.”
한국에 있으면서 연극이 사라진 학교 교육의 아쉬움을 느꼈다는 그는 “아동극은 희곡을 읽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연극무대를 만들어서 함께 어울리면 사람의 참된 진리를 얻을 수 있다”고 권했다. 특히 “전래동극은 서구문화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우리 정서를 키우는데 가장 좋은 매체”라고 소개했다.
“미국에서는 한국 할머니 할아버지와 손주들이 친해질 수 있어서 더 좋습니다. 극에 출연하는 재미동포 2·3세들이 한국말을 익히기 위해 노인들과 대화를 하기 때문이죠.”
연세대 의대 재학 중 연극에 빠져 유치진의 문하에 들어가 희곡을 쓰기 시작한 주씨는 1953년 전국학생극 각본현상공모를 시작으로 국립극장이 공모한 희곡에 당선되는 등 연극계에 선풍을 일으켰다. ‘연극을 통한 어린이교육’이 그의 목표. 1962년 아동극단 ‘새들’을 만들고, 한국아동극협회를 조직해 전국아동극경연대회도 개최했다. 배우 임동진, 안성기, 윤여정, 서인석, 박원숙씨 등이 그의 극단에서 성장한 제자들. 송승환, 손창민씨 등은 경연대회를 통해 배출한 배우다. 아동극집 ‘파랑새의 꿈’ ‘숲 속의 꽃신’ ‘밤나무골의 영수’ 등과 이론집 ‘교사를 위한 아동극입문’, 이민생활의 소회를 적은 수필집 ‘민들레의 현주소’ 등의 저서가 있다.
1976년 국립 아동극극장 설립추진이 마지막단계인 국회에서 부결되자 그는 “어린이의 정서를 기르지 않는 나라는 희망이 없다”며 이민을 갔다. “그래도 이 땅에 남아 더욱 노력했다면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후회를 했지만,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아동극을 알리는데 여념이 없는 그에게 ‘이민’이란 단어는 낯설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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