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를 털어내지 않고 포장해 옮겨내는데만 꼬박 이틀이 걸렸다. 씨트박스로 3백60개, 4.5톤 화물차 두대를 가득 채운 엄청난 양이었다. 햇빛 제대로 들지 않은 20여평 비좁은 공간안에서 숨죽이고 있던 조선시대의 책판 목판의 외출은 특별했다.(10월 11일자 본보 18면 보도)
전주의 출판문화 뿌리를 증명하는 조선시대의 책판 목판 ‘완판본’이 전북대박물관 수장고에 옮겨진 11일, 목판정리작업을 자문할 연구자들이 모였다. 전북대 이태영(국문과)·이양수(응용목재학과)교수와 예원예술대 이동희교수, 그리고 정리작업 책임연구자인 전북대박물관 홍성덕 학예연구사다.
그동안 치명적인 훼손위기에 처해있는 ‘완판본’의 보존문제를 꾸준히 제기하며 학문적으로도 완판본의 가치를 연구해온 연구자들인만큼 완판본이 공개된 자리에서 만나는 기쁨은 컸다.
"전라감영에서 전주향교로 옮겨진 후 제대로 분류 정리작업 한번 이뤄지지 못한 목판들이 비로소 공개되어 각분야 연구자들이 유기적으로 연구할 수 있게 된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완판본의 존재와 그 가치를 널리 알려온 이태영교수는 “이제라도 장판각의 목판이 정리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고 말했다.
전주향교의 장판각 목판이 본격적인 정리작업에 들어갔다. 이 사업은 전주시가 올해초 예산을 세워 추진해온 것. 전북대 박물관은 지난 9월 실시된 전주시의 목판정리사업 단체 공모에서 선정돼 사업을 위탁받았다. 지원예산은 7천5백52만원이다.
정리사업의 내용은 목판의 청소와 정리 및 조사연구. 목판의 분진 및 이물질을 제거하고 목판의 판목별 내용 분류와 보존현황을 조사하는 전반적인 작업이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장판각 목판에 대한 종합분석 및 서지학 ·역사학·보존과학 분야의 검토 연구. 이 작업이 끝나면 목판 보존 환경의 분석은 물론, 전라도 완영목판의 의미와 향후 보존방안까지 제시할 수 있다.
현재 시점에서 연구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목판의 훼손 정도다. 방습 방충시설이 되어 있지 않은 비좁은 공간에서 마치 기왓장을 쌓아놓듯이 노끈으로 묶이거나 마구잡이로 쟁여 보관되어 있던 목판들은 이미 습기로 상당수가 원형을 잃었고, 해충까지 번지면서 부식상태가 진전되고 있었던 상황이기 때문이다.
목재보존을 연구해온 이양수교수는 지난 4일부터 실시된 목판 이송작업을 위한 기초자료조사과정에서 해충 채취 등 목판의 보존 상태에 대한 미생물학적 연구를 이미 시작했다.
이교수의 작업은 목재의 수종을 파악해 목판이 만들어졌을 당시의 환경에 대한 복원을 가능하게 하는 것.
“목판 자체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는 유물들이어서 얇은 삭편만으로 분석을 통해 수종을 식별해낼 계획”인 이교수는 연대 추정이 가능한 목판의 연륜으로 당시의 데이터를 확보함으로써 조선시대 목재의 연륜연대 패턴과 목재의 벌채 연도를 추정할 수 있으며 제작 이후 교체된 유물도 파악이 가능하다고 소개했다.
이교수에 따르면 목재유물의 연대를 측정하기 위해 '연륜연대법'이 실행되고 있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한국산 수종에 의한 데이터 베이스가 부족해 그 결과에 대한 신뢰성이 떨어지는 실정. 따라서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있는 유물의 데이터는 그만큼 가치가 있다.
이 작업을 위해 목판을 정리하는 작업과는 별도로 수종은 물론, 목판의 함수율 조사나 충해현황, 유충과 성충 채집, 목판의 표면처리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 보존처리를 위한 실험과 복원용 부재의 천연 내후성 및 건조성 실험까지의 과학적인 연구작업이 포괄적으로 진행된다.
목판정리사업은 내년 2월 4일까지(90일간)로 예정되어 있다. 그러나 조사 이후 별도의 대책이 세워지지 않는 한 목판은 다시 장판각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상황. 5천여개의 아름다운 목판 인쇄본을 보존하고 전시할 수 있는 공간 확보가 과제로 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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