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역사를 추적하는 일은 역시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태초부터 오늘에 이르는 소리역사의 긴 여정을 담아낸 개막작 ‘소리환타지-열려라 천년의 소리’는 당초의 취지를 무난히 살려내는데 성공했지만 신선한 감동은 끌어내지 못했다.
공연시간 90여분. 여섯개의 이야기로 짜여진 이 작품은 각 장마다 독립된 내용과 형식으로 관객들을 흥미롭게 했지만 고르지 못한 예술적 기량의 면면들은 오히려 장르별 편차를 두드러지게 하는 장치로 작용하면서 예술적 긴밀성을 얻어내는데 걸림돌이 됐다.
‘소리환타지’는 전북도립국악원이 의욕적으로 기획하고 제작한 작품이다. ‘단순히 소리의 역사를 들려준다기 보다 소리의 역사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보이고 싶었다’는 것이 연출자 김정수의 의도다. 작품 전개로는 그것이 지닌 상징적 메시지를 별 무리없이 전달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문제는 이 상징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동원된 다양한 형식과 극적 구성의 면면이다. 전체적인 흐름으로 보자면 이 작품은 연극적 장치가 중심을 이루는 초반부와 도립국악단의 기량이 밀도있게 보여진 중반부, 무대의 외연을 넓히는 다양한 퓨전이 결합된 후반부로 전개된다.
전체적으로는 유기적 틀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독립적인 내용과 형식을 지향하는 형식은 주목을 모을만 하다. 음악의 상징성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장치의 선택은 특히 그렇다. 종으로는 소리의 역사를, 횡으로는 다양한 소리스펙트럼을 배치함으로써 소리의 시간성과 공간성을 조화시킨 시도도 돋보이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극적 전개의 감동이 반감된 이유는 따로 있다. 지나치게 작의적인 연극적 요소나 무대의 완성도를 눈높이보다도 낮추어버린 현대춤, 사족이 되어버린 영상기기의 동원, 세련되지 못한 무대장치 등 은 감동을 반감시킨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끝내 앞세워지지 못한 사물놀이의 존재도 아쉽다.
물론 박수 보낼 수 있는 요소도 있다. 창극단과 관현악단의 더 깊어진 역량을 만난 것은 반갑다. 오정숙 명창의 짧은 소리나 여섯명 아이들의 능청스런 연기와 소리기량은 특히 아름다웠던 풍경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의미있는 성과는 이 지역 국악의 역량이 새삼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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