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 생명력' 화폭으로
전시장에 도착하기 전 물 속에서 통통하게 불려 온 콩들이 이제 막 싹을 틔웠다. 12월 초부터 길러온 머리가 푸른 콩나물들은 어느새 손바닥 한 뼘 길이만큼 자라있다.
139일 동안 땅 속에서 자라 수확된 콩들이 물 속에서 다시 자라고 있다.
30일까지 전주얼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고보연씨(32)의 ‘139일의 숨소리’. 2003년 전북청년미술상 수상기념전인 이번 전시는 콩을 재배하고 그 콩으로 콩나물을 기르는 과정을 미술화했다.
“처음 시작은 족욕, 반신욕 등 몸을 씻어주고 피로를 풀어주는 물을 주목했어요. 물로만 자랄 수 있는 것을 생각하다보니 콩과 콩나물에 이르게 됐어요.”
가족들과 함께 콩을 파종하고 수확하는 과정은 고씨에게도 큰 즐거움이었다. 평소 미술이 어렵고 멀게 느껴지는 것이 아쉬웠던 그에게 관람객들이 콩나물에 직접 물을 줄 수 있는 이번 전시는 소소한 즐거움이 가져다 주는 휴식과 같다.
“콩나물을 키우다 썩어서 버린 것들도 많았어요. 무엇인가를 책임지고 심고, 기르고, 재배하고, 다시 키워내는 과정에서 생명력을 느끼는 순간 마다 ‘생태를 통한 치유’라고 생각했어요.”
‘휴식’을 상징하는 텐트 모양의 나무틀과 그 위에 놓여진 서른 두개의 콩나물 동이는 작가가 직접 짠 것. 몇 일 간격으로 길러낸 콩나물들이 각기 다른 길이로 자라나고 있어 작품 제작과정을 관통하는 시간의 흐름도 느낄 수 있다.
전시기간 중 점심시간에 맞춰 전시장을 찾는다면 작품으로 만든 콩나물밥을 먹는 행운도 누릴 수도 있다. 한 움큼 콩나물을 뽑아 ‘콩나물 5백원 어치’를 봉투에 넣어주는 작가의 훈훈한 인심까지, 적은 돈으로 든든한 젊은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게 되는 기쁨이 바로 이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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