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탓(?)인가? 원가를 자꾸 잃고, 또 잊는다. 그런 가운데 그래도 거뜬 한것은 구호다. 이를 간파했는지 현대 소비사회는 광고 속에 기막힌 구호들을 만들어 낸다. 이미지가 또 하나의 소통도구가 된 가운데 가히 예술이다.
이를 역전이라 해야 할까? 뒤바꼈다 해야 할까? 고전적인 구호 중에하나인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는 말 또한 적용이 어렵다.
내 하는 일이 예술이다, 아니다를 떠나 그 비슷한 곳에서 살다보니 가끔 예술뮨화에 대한 의견을 갖게 된다. 그러면서보면 결코 예술이 길지않다. 오히려 인생이 길다. 어렵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차라리 산다는 게(인생) 어렵지 예술이 무어 어렵냐'고 막말도 하곤한다.
우리 사는 삶에서 가장 고도의 정신 행위이며 전위적이랄 수 있는 예술문화가 과연 진장성을 담보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오늘, 사는 삶의 하나의 행위인 예술과 우리 삶과의 괴리감은 과연 무엇일까?
이게 당장 사는 삶을 무시하고 '예술을 위한 예술' 탓은 아닐까? 예술이라는 행위가 고도의 정신행위이며 전위적인 활동이다하여 행세하는 걸 당연시 여기다가 우리 사는 삶과는 상관없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이는 단순하게 소비사회의 첨병인 광고만 탓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예술문화가 스스로 역할을 잃으면서 그 자리를 자연스럽게 대체한 것으로 보여지니 말이다.
'예술을 위한 예술'은 '인생을 위한 예술'이 아닌 '예술을 위한 인생'이다. 좋은 시절에는 그럴 수도 있었겠다. 예술을 위한 인생 말이다.그렇지만 사는 게 서툰 사람으로, 어려운 사람으로 인생을 위한 예술을 기대한다.
우리 사는 삶의 질을 생각 할 때 문화적 환경 가운데 예술문화는 그 역할이 매우중요하니 말이다. 오늘 갈 길 몰라하는 예술문화의 방향성은 분명 우리 사는 삶의 키를 잡아 흔들고 있다.
대중문화가 경계를 넘나들며,아니 이미 점령군이 되었음을 본다. 대중문화의범람과 득세는 분명 우리 삶의 한 방편일 뿐일 것이다. 그 점령군의 병폐는 우리 사는 삶을 향유자로 착각케 하며 결국 강제한다는 것이다. 강박한다는 것이다.
잠깐, 우리 사는 게 쉽던가? 만만하던가? 과연 이 어려움을 비견 할만한 게 무어 있던가? 이에 분명 예술문화는 여전히 유효하다. 이제 예술문화의 당사자는 물론 향유자와 함께 새로운 노력이 이루어 져야겠다. 그래 꼭 함께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이현배(옹기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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