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이 꽁치과메기였구나. 덕장에 주렁주렁 한 두름씩 걸려 짭조름한 바람 속을 유영하고 있구나. 청해를 누비며 군무를 추던 그 모습 그대로 박제된 듯 하구나. 너희들은 본디 날렵한 몸매에 감청색 양복, 하얀 와이셔츠를 받쳐 입은 깔끔한 신사가 아니더냐.
하지만 설한풍에 휘불리어 낡은 외투를 걸친 초라한 노숙자 같구나. 유리알 눈동자 납덩이가 되어 박혀 있구나. 살을 에는 추위에 악다물었던 입마저 벌어져 가늘고 긴 신음 토해내고 있구나.
나는 사열하듯 너희들을 둘러보고 있다. 획일적인 표정, 허망한 눈동자 흙투성이 어설픈 훈련병 같구나. 가스실로 열 지어 들어가는 벌거벗은 유대인들 같구나. 대열사이로 넘실되는 너희들의 푸른 고향이 보이는데, 맑은 눈물이 보이는데.
한때 너희들은 해풍 속을 훨훨나는 갈매기가 되는 것이 꿈이었을 게다. 가끔 갈매기의 흉내를 내며 물위로 튀어 올랐겠지. 하지만 지금 공중에 매달린 기분이 어떠니. 바람을 타는 기분이 어떠니. 모두가 고개를 떨어뜨리는구나. 이제 풍경처럼 바람에 몸을 맡기는 슬픈 운명이구나. 물결을 힘차게 거스르던 지느러미는 무용지물이 되었구나.
너희들은 지금 무엇을 꿈꾸고 있니. 노아가 방주를 띄울 때 내렸던 그 엄청난 비, 그 혁명의 비를 기다리는 것은 아니냐. 물결이 내 몸에 조금만 닫기만 한다면 다시 한번 온몸을 비틀어 바다로 뛰어들 수 있을 텐데.
새로운 삶을 살 것 같은데. 너희들은 잊지 않고 있겠지. 청해를 노닐던 그 때를, 그 자유를 그리고 느닷없이 검은 그물에 걸려 박제된 그 날을. 그 방심의 날을.
나는 다시 해안도로를 따라 차를 몰고 있다. 또 다시 하나, 둘 만나는 과메기 덕장. 점차 뻗두룩해지는 몸을 풀기위한 안간힘인가. 멀리서도 너희들의 몸부림치는 모습이 가슴 아프다.
해안가 선술집에 들렸다. 누른 종이에 ‘과메기 있습니다.’라고 적힌 문구가 견장처럼 붙어 있다. 하얀 접시에 대가리와 내장과 뼈가 추려진 얼 말린 과메기 몇 마리가 올려져 나왔다. 참으로 다행이다. 검게 탄 눈과 내장이 함께 담겨져 왔다면 그 절망의 덩어리를 어떻게 먹을 수 있겠는가. 이제 모든 애착을 버리고 누운 진갈색 살점들이 더없이 편안해 보인다.
나는 꾸덕꾸덕한 과메기 한 점을 생미역에 싸서 초고추장에 꾹 찍어 입에 넣었다. 쫀득쫀득한 과메기는 유연한 몸짓으로 목구멍을 타고 헤엄쳐 들어갔다. 전혀 걸림이 없다. 얼마나 깔끔한 보시인가.
내 배 속이 무덤이다. 방형도 장방형무덤도 아니다. 자궁 같은, 고향 같은 무덤이다. 잔에 바다처럼 맑은 소주를 한잔 따라 마신다. 그리고 염원한다. 이 길이 환생의 길이 되라고, 이 세상에서 과메기가 된 것을 서러워 말라고, 어차피 인간도 죽으면 어두운 땅 속에서 얼리고 풀리는 영원한 과메기가 된다고.
인간 세상은 잡고 잡히는 살벌한 곳이다. 나는 졸지에 떼송장이 되어 걸려있는 너희들의 천편일률적인 표정에서 나의 모습을 보았다. 아니 한결 같이 황금을 좇는 개성이 말살된 인간들의 박제된 군상을 보았다.
너희들이 느닷없이 그물에 걸려 과메기가 되었듯이 인간도 어느 순간에 땅 속 과메기가 될지 모르는 어지러운 세상이다. 지금도 현실의 그물에 걸려 찬바람 부는 어느 지하도 구석진 곳에서 얄팍한 박스를 깔고 누워 꾸덕꾸덕한 과메기가 되어가고 있는 인간들이 수두룩한 세상이다. 너희들이 청해가 그립듯이 인간도 돌아가지 못할 어머니의 따뜻한 자궁을 꿈꾸고 있단다.
매운 업보를 치른 과메기들아. 주검이 되어서도 뜬눈으로 용맹정진 하였고, 육신을 버리고 정신을 구하는 수도승처럼 온몸을 보시하여 공덕을 쌓았으니 좋은 인연으로 다시 태여 나길 기원한다. 나는 젓가락으로 또 한 조각의 살점을 집어 입에 넣는다. 부디 내 속에 들어가서 절집 추녀 끝에 매달린 풍경처럼 내가 방일하고 나태할 때 댕그랑댕그랑 맑은 소리로 나의 가슴을 깨워 주길 바란다.
덕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풍경들아. 과메기들아. 선술집 앞 붉은 가로등 위에 너희들의 꿈이었던 갈매기가 솟대처럼 서서 밤하늘의 먼 구름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구나, 과메기야, 꽁치과메기야. 공덕과메기야.
/김인호
*꽁치과메기: 동해지방에서 꽁치를 덕장에 널어 해풍에 얼 말린 것
"난생 처음 경험하는 뜨거운 전율" 김인호씨 당선소감
절집을 나왔다. 매운바람이 몸을 움츠리게 했다. 추위에 내몰리어 산길을 종종걸음 치던 내 발길을 묶는 것이 있었다. 한겨울 냉기를 뚫고 가늘고 긴 가지 끝에 진달래 봉오리가 봉긋 솟아나 있었다. 그것은 흡사 성냥개비 끝에 붙어서 점화를 기다리는 빨간 화약처럼 보였다.
그 탱글탱글한 봉오리는 햇볕이 대지를 스치는 어느 날 성냥불이 일 듯 일순간에 붉은 꽃을 피울 것이다. 뿌리는 지금도 그 순간을 위해 부단히 어둡고 차가운 땅을 헤집고 있을 것이다. 느닷없이 얼굴이 달아올랐다. 내 언제 저렇게 치열하게 살아본 적이 있었는가.
내 언제 저만큼 글에 혼신의 힘을 쏟아 보았는가. 대상에 끊임없이 매달려서 종국에는 아름다운 작품의 꽃을 피우고 마는 열정적인 정신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문학정신이요, 수필정신이 아니겠는가. 그렇지 못한 나는 공연히 꽃봉오리 보기가 민망했다. 그러고도 은근히 신춘문예에 당선을 기대하며 염치없이 부처님과 아버지 영정에 넙죽넙죽 절을 올렸다.
절집에 모셔둔 영정은 재가 덮여 누렇게 얼룩져 있었다. 하얀 수건으로 그 얼룩을 말끔히 지웠다. 반질반질해진 유리액자에 아버지의 얼굴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얼마 전 꿈속에서 아버지는 저 얼굴로 나를 빤히 들여다보시더니 발을 돌려 총총히 현관문으로 사라지셨다.
무언가 한 마디쯤하고 싶으신 듯 보였다. 어머니를 잘 모시라는 말씀이었을까. 삶을 열심히 살라는 말씀이었을까. 그렇게 아버지를 뵙고 돌아오는 차 속에서 당선 소식을 전해 들었다. 식구들은 전화 받는 내 목소리가 떨렸다고 했다. 사실 그것은 난생처음으로 경험하는 뜨거운 전율이었다. 나는 이 전율을 내 문학정신에 깊이 심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우선 아직 여물지 않은 글을 뽑아주신 전북일보사와 심사위원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늘 문학정신을 일깨워주시는 선생님과 동서문예 문우들에게도 이 소식을 전하고 싶다. 내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내, 나영, 나경 두 딸에게도 이 기쁨을 전한다. 당선패를 받으면 다시 아버지를 찾아뵈어야겠다.
<김인호 약력>김인호>
1958년 부산출생
한국방송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
‘수필과 비평’ 2003년 등단
심사평
예선을 거쳐 올라온 작품들이 적지 않았지만 모두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서 읽는 재미와 고르는 어려움을 함께 겪어야 했다. 대부분 중·장년들의 작품이어선지 다양한 제재 속에 만만찮은 사색의 깊이를 담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일상에 대한 겸허한 반성, 가족·이웃간의 사랑, 사물에 대한 진지한 성찰 등의 내용을 산문 형식 속에 담는 방식도 다양하게 구사되어 있었다.
먼저 십여 편을 골랐다. ‘어머니에게 못한 이 편지를’(이한교), ‘눈으로’(정병율), ‘달팽이 소리 지르다’(김경순), ‘문’(김윤선), ‘꽁치’(이경임), ‘옹기가 있는 풍경’(모임득), ‘길 위의 사람들’(곽흥렬), ‘벽’(김정임), ‘숲으로 가는 길’(박선희), ‘두절이 소통이다’(김완수), ‘민들레족’(옥남), ‘네가 과메기로구나’(김인호) 등은 나름의 개성과 묘미를 갖춘 수준작들이었다. 소재를 주제로 구현해 가는 솜씨, 울림의 크기, 내용과 형식의 조화, 문장에 깃든 향취 등을 염두에 두고 다음 다섯 편을 다시 읽었다.
‘벽’은 자연스러운 문장과 무리 없는 짜임이라는 미덕을 지녔지만 울림이 적은 것이 아쉬웠고, ‘숲으로 가는 길’은 아버지에 대한 애잔한 연민은 담담하게 잘 녹아 있지만 약간의 군더더기들이 전체적으로 구성의 긴장도를 느슨하게 하였다. ‘두절이 소통이다’는 정확하고 예리한 논지 속에 작가의 목소리가 분명하게 살아있는, 그래서 에세이 성격이 강했으나 오히려 그 점 때문에 전체적으로 메마르고 딱딱하였다.
‘민들레족’은 우연한 일상 경험을 주제로 다듬어가는 짜임새가 돋보이고 무엇보다 잘 다듬어진 문장 속에 큰 울림을 담고 있어서 여운이 깊었다. ‘네가 과메기로구나’는 사물에 대한 관찰력이 탁월하고 그 관찰의 결과를 자신의 삶과 일상에 대한 성찰로 연결하는 솜씨도 남달랐으며, 그것을 담아내는 문장도 재치와 운치 사이를 넘나들면서도 도를 넘지 않는 절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읽혔다.
‘민들레족’과 ‘네가 과메기로구나’는 공히 당선작으로서 손색이 없다고 생각되었으나, 한 편을 고르는 책무 때문에 결국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더 높다고 판단되는 후자를 뽑았다. 이 작품 외에 함께 응모된 같은 작가의 다른 두 편의 수필이 각기 다른 특색을 지니면서도 모두 일정한 품격을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예리하면서도 여유로운 이 작가의 미덕이 한결 미더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심사위원
임명진(전북대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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