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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당선소감·심사평

되돌아보는 일, 이전 시리지만은 않다..정원자씨 당선소감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2004년은 나에게도 유난히 힘들고 아픈 한해였다.

 

졸업과 함께 부모님에게로부터 독립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일상의 상처들이 삶의 멍울로 흔적을 남기며 쌓여질 때면 나는 수시로 지난날을,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살자 다짐하곤 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자꾸만 되돌아보는 일이 약이 아니라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이를 한 살 두 살 보탠다는 것은 그저 숫자를 늘려가는 것 뿐만이 아니라 더해지는 나이만큼 힘든 기억들이 차곡차곡, 꼭 그만큼씩 쌓여진다는 것. 그래서 되돌아보면 볼수록 아프고 시리다는 것.

 

비겁한 일이지만 그래서 나는 돌아보고 반성하고 다시 나를 독려하고 그러기보단 잠시 외면해주거나 모르는 척 넘어가 주거나 하면서 버텨왔던 것 같다. 그러다 중독이 되고 습관이 되고......

 

가을이 끝나갈 무렵 나는 그동안 내손에 쥐고 놓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많은 것들을 놓아버렸다. 10년을 버티던 TV가 느닷없이 고장이 났고, 그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해왔던 일을 놓아버린 나는, 나의 두 다리였던 자동차의 열쇠를 동생에게 넘겨주고 작정한 듯 휴대폰의 전원을 껐다. 마치 겨울잠에 들어가는 짐승처럼 나는 그렇게 방안에 틀어박혔다.

 

그리고 그 대신, 그동안 내려놓았었던 것을 다시 집어 들었다. 졸업하고 10년 가까이 들지도, 놓지도 못하고 그저 짬짬이 꺼내보며 마음만 헤집던 오래된 꿈.

 

이제…. 돌아볼수록 설레고 행복한 기억하나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힘들었던 기억들이 아프지만은 않다.

 

감사할 분들이 많다는 것 또한 큰 행복이다.

 

한사람의 독자로서 존경하던 서정인 선생님과 이병천 선생님으로부터 점검을 받았다는 것은 내게 또 다른 기쁨이고 영광이다. 더불어 내 일처럼 기뻐해준 충애언니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은선이. 그리고 언제나 크고 영원한 나의 재산인 가족과 당선 소식을 전해 듣던 순간에 마침 함께 있어 기쁨을 나눌 수 있었던 한 사람에게도 고맙다 전하고 싶다.

 

 

<정원자 약력>

 

1972년 완주 출신

 

백제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인테리어 기사로 활동 중

 

심사평

 

이 신성한 첫새벽에 굳게 빗장을 닫아 건 문학의 장원이 잠시 사잇문을 연 틈에 나발소리처럼 길게 들려오는 금계(金鷄)의 고고한 울음을 듣게 된 이가 누구인고? 그들에게만큼은 이 울음소리가 오래 인내하며 기다린 참다운 한 소식이 될 수 있기를!

 

올해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에 응모된 작품들을 모두 읽고난 소회가 바로 그러했다. 당선자는 다른 응모자들에 비해서 분명 더 오래 깨어 있었고 더욱 인내했으며 자신의 세계에 더 명징하고자 애를 쓴 흔적이 역력했다. 그에 비한다면 여기 본심에서 언급된 이들을 비롯한 많은 작가 지망생들은 장인으로서의 일정한 수준을 갖추고는 있었지만 무엇인가 한 두어 가지 흠결들을 깔끔하게 마무리 짓지 못하여 각자 드러내 보이려는 세계가 흐릿하였다.

 

노혜옥씨의 ‘폭설’은 경제가 어려운 현실과 그 폭설 같은 상황에 처한 주인공이 걸어가고 있는 앞길의 암울함을 잘 묘사한 작품이다. 아버지를 비롯한 과거의 인물들이나 사건 처리도 비교적 무난하였으며 평이한 가운데 문장 호흡도 고른 편이었다. 하지만 상황설정과는 달리 스토리 자체는 감동을 주지 못했으며 주인공의 마지막은 너무 구태의연한 영상 결말을 보는 듯했다.

 

노원씨의 ‘오드 아이(Odd Eye)’는 문장이 아주 돋보였으며 기지촌이라는 독특한 작품 배경과 사진 작업이라는 화자의 행위가 신선해 보였다. 얘기를 끌어가는 작가의 입심도 높이 살만 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진을 오려 붙이는 화자의 무의미한 행위에 대한 반복적인 묘사가 거슬렸으며 스토리는 오히려 그 행위들 속에 가려지는 바람에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단편소설에서는 모든 게 구비되어야 하되 넘치는 부분 또한 없어야 할 것이다.

 

조하나씨의 ‘나쁜 연인’이라는 응모 작품에도 똑같은 지적이 뒤따라야겠다. 섬세한 묘사라든가 구성, 소설을 이끌어가는 힘, 스토리 모두 흠잡을 데 없는 완결미를 자랑한다. 그런데도 선뜻 이 작품을 선택하지 못한 이유는 아무리 단편이라고는 하더라도 문학이라는 형태로 인간의 영혼에 깊은 울림을 줘야 한다는 우리 자신들의 약속에는 조금 미치지 못한 듯 보였기 때문이다. 외래어 남발이 문제가 될 수 있었으며 이유 없는 구타를 당하면서도 쿨(cool)하게 세상을 마주하고 있는 화자, 작품은 그만큼 건조한 느낌을 주었고 이 때문에 무엇인가가 빠져버린 듯한 공허감이 흠이라면 하나의 흠이었다.

 

당선작으로 뽑은 정원자씨의 ‘통행권을 받으십시오’는 화자 자신의 갈등 묘사가 적은 점이라든가 TV에 집착하는 심리에 대해 설득력이 약해서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조금쯤은 산만한 구성을 지적할 수도 있겠다. 그런 점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고속도로 톨게이트라는 독특한 공간을 활용한 측면이라든가 한쪽 다리가 짧은 여인에 대한 묘사가 생동감 있게 다가왔으며 끝 부분에 우연히 만난 사내와 동행하는 설정 등이 희망적으로 읽혔다.

 

과거의 사건들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도, 그리고 재빨리 현실 속으로 방향을 트는 솜씨나, 그 과거가 현재를 어떻게 규정하는지 은근슬쩍 내비치는 속내 묘사도 돋보였다. 무엇보다 우리는 당선자로부터 희망을 높이 샀다고 고백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지금의 희망이 유효한 건 아니다. 그리고 이 희망은 작품 내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외적인 가치일 수도 있음을 명심했으면 한다. 축하의 말에 앞서서 먼저 이 작가에게 희망을 주문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심사위원

 

서정인(소설가), 이병천(소설가)

 

전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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