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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이제는 '현장'이다

지난 12월 29일, 마침내 문예진흥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마침내’라고 하는 이유는 개정안이 상정되고 통과되기까지 수많은 갈등의 고비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통령 공약사업이기도 했던 문예진흥법 개정안이 16대 국회에서 좌절되자, 문화예술인들은 ‘기초예술연대’를 꾸리고 ‘문화 IMF’를 선언했다.

 

당시 출범식에 참석한 중견 연출가 김철리(전 국립극단 예술감독)씨는 “연출가 생활 18년 만에 2년 동안 월급 받아보고 최근 3개월 째 실업상태”라고 호소했고, 소설가 전성태 씨는 “문인들은 영화판으로 돈 되는 곳으로 몰려”가고 “정부는 시민들을 찾아 나서는 행사를 할 때만 지원을 해준다고”하고 “평론가는 잘 나가는 문학인만 집중 조명”하는 것이 문학판의 현실이라고 한탄했다.

 

그러나 이들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니들이 좋아서 하는 것 아니냐’는 냉소와 무관심을 넘어서지 못했다. 문예진흥법 개정안이 16대 국회에서 좌절된 이유도 “다급한 민생현안이 아니다.”고 생각하는 일부 국회의원들 때문이었다.

 

그 과정을 일컬어 황석영은 “길고 지루한 구걸행각”이라 표현했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한 조각의 빵이 아니라 이 사회가 진정으로 예술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고 선언한 이유도 더 이상 자존심을 다치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어쨌든 2004년을 이틀 남겨놓고 문예진흥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현행 문예진흥원을 민간자율기구인 ‘문예진흥위원회’로 개편하고, 문광부 장관이 위촉하는 11명의 위원을 두도록 한 것이다.

 

분야별 사업별 소위원회를 합하면 150여명의 위원이 참여하게 된다. 예전의 문예진흥원이 문예진흥기금을 관리하고 배분하는 역할을 했다면, 민간주도의 위원회는 문화정책을 세우고 집행하며 조정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막강한 예산과 권한을 가진 ‘위원’을 어떻게 선임하고 운용하느냐가 다시 논쟁의 초점이 되고 있지만, 기초예술을 살릴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는 데는 모두 동의하는 분위기다.

 

문화예술의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정책을 입안한다는 것은 마치 노조원이 회사의 경영원칙을 세우는 것만큼 혁신적인 발상이다. 이 발상을 현실로 옮기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과 시간 투자가 필요하다.

 

특히 지역 단위에서 문화정책을 세우고 집행하는 일이 매우 중요해진다. 이미 광주에서는 민간재단 최초로 지역문화사업의 법적 권한을 부여받은 ‘광주문화예술진흥위원회’를 출범시키고 24억 원 규모의 사업을 맡아서 추진할 예정이라고 한다. 전주에서도 문화재단 출범을 놓고 찬반 의견이 맞서고 있다.

 

어떻게 결론이 나든 지역문화예술인들의 높은 정책적 식견과 역량이 요구되는 것만은 분명하다. 현장 중심의 문화정책이 실시된 마당에 현장이 처한 현실과 대안을 내놓지 못한다면 더 이상 변명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모쪼록 문예진흥원 조직개편을 기점으로 예술인들의 삶이 좀더 윤택해지기를, 현기영 원장의 말대로 “예술정책을 수행함에 있어 상상력의 높이가 삶의 높이로 되돌아”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선경(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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