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별반 달라진 게 없어요. 젊음의 낭만이 가신 나이탓인지, 외려 둔감한 둔치가 되고 팍팍해졌다는 느낌입니다.”
마른 대나무는 푸른빛이 가셨어도 그 결이 더욱 곧다. 최승범 전북대 명예교수(74)가 <가랑잎으로 눈 가리고> 를 펴냈다. <자연의 독백> (1998) 이후 6년 동안의 시작을 정리한 것이다. 시인은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멋이 있어야 하는데, 시가 딱딱해진 느낌”이라고 했다. 자연의> 가랑잎으로>
“무엇이 우리 전통이어야 하는가를 고민합니다. 새로운 것에 담싹 안기는 것 보다 눈 크게 뜨고 옛 것을 살펴 오늘에 되살리는 것이 중요해요.”
외래 사조에 눈길 한번 주지 않고 한 길 만을 고집해 온 최교수를 두고 백수인 조선대 교수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계승과 발전 안에서 그의 저술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그가 창조한 시의 모습 역시 전통적 틀 안에서 인간의 올곧은 삶과 정신을 찾는다. 쉽게 흥분하고 노하는 파도소리가 아닌, 당당하고 조용하게 흐르는 도랑물 소리다.
“내 딴에 세강속말(世降俗末)이라고 이렇궁 저렇궁 뇌까려본 시편들도 이제보면 한낱 가랑잎으로 눈가리고 아웅하는 꼴이 된 것만 같아요. 우리 나이에서 보면 요즘 사회 풍속이 어지러워 내 나름대로 쓴소리를 하고 싶었습니다.”
맑게 걸러지고 절제된 시를 써왔던 최교수는 이번 시집에서 좀더 느슨해 졌지만 여전히 날카로운 시선을 보여준다. ‘1회용’ ‘지역감정, 본적 없애기’ ‘지랄’ ‘전쟁선포’ 등 ‘상말’ 연작시는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그의 심지가 담겨있다.
“어딜 가도 보고 잊어버리는 것보다 새겨두고 싶어 기행시를 쓴다”는 그는 이번에도 ‘금강산 육로관광 기행’ 연작시를 비롯 여려편의 기행시를 내놓았다. 스승 가람 이병기 선생과 장인 신석정 선생을 그리는 마음은 ‘가람 고택에서’와 ‘대바람 소리-석정선생의 시집을 읽다가’에 풀어놓았다.
이번 시집은 ‘정신과표현’ 발행인 송명진 시인과의 우정으로 엮어진 것. 최승범 시인을 그린 소묘와 시집 중간 중간 삽입된 그림 역시 김영태 시인의 작품이다.
“길게 요설적으로 쓰는 것보다 자꾸 응축시키는 것이 더 맞는다”는 최교수. 짧은 시에 담아놓은 그의 목소리가 눈과 마음을 씻어주고 세상의 이치를 밝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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