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한 해 소망을 빌었지 어깨춤 절로나는 굿 치고 싶어"
“사는 거 별거여? 한바탕 웃고 놀다가면 되는 것이지.”
위태로워 보였다. 되레 그칠 줄 모르는 상쇠의 꽹과리 소리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혹시나’ 하던 구경꾼들이 나서 ‘힘드시지 않냐’며 위로의 말을 건네보기도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를 말리지는 못했다.
정월 대보름 판굿이 벌어진 19일 오후 임실군 강진면 필봉마을. 300년 이상이나 전통 마을 굿이 지켜져온 필봉굿의 진수를 맛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수 백명의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던 굿판의 ‘스타’. 임실필봉농악보존회(회장 양진성)의 최고령인 채규병 할아버지. 굳이 나이를 밝히지 않는다면 굿판에서 보여지는 날렵함이나 기력으로 보아서는 그의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다.
올해 여든살. 매서운 칼바람에 ‘내복’ 한벌로 무장한 채씨 할아버지는 틈틈이 소주 한잔에 목을 축이며 추위를 녹였다. 그리고는 지칠 줄 모르고 판굿에 몸을 실었다.
“끝까지 할랑가 모르것소. 몸이 예전같지 않네 그려….”
소고잽이인 채씨 할아버지는 큰 원을 그리는 바깥 쪽에서 앞서거니 뒷서거니 뛰어다니며 거친 숨을 몰아치다가도 상쇠의 꽹과리 소리가 앞서면 망설일틈 없이 또다시 힘을 내 판을 따라잡는다.
“풍물은 참 마술같은 거여. 글씨, 힘이 부쳐 지치다가도 흥이 나면 신들린 사람 마냥 힘든지 모르니까 말여.”
채씨 할아버지는 필봉마을 사람이 아니다. 필봉에서 1.5㎞ 정도 떨어진 건너마을 ‘이목마을’에서 원정 온 풍물패다.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으면서도 그간 ‘필봉굿’을 접하지 못했던 그는 지난 91년 필봉굿 보존회에서 회원을 뽑는다는 말을 듣고 무턱대고 보존회를 찾았다. 함께 풍물을 치고 싶은 마음이 전부였다.
“뭐, 아는 것이 있었어야지. 늙으면 할 일도 없고 해서 했던 것인디 벌써 15년이란 세월이 지났어.”
자녀들은 모두 객지로 나가 살고, 8년 전 ‘늙으막에 외로움 모르게해주었던’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났으니 외롭고 쓸쓸한 생활에 지쳤을 법 한데도 필봉굿에 남은 인생을 ‘올인’한 할아버지의 얼굴은 웃음이 가득이다.
“늙었다고 앉아서 대접만 받을 수 있는가. 자식, 손자 같은 사람들하고 어울려 노는 것이 행복이라면 행복이지.”
한 해를 정월 대보름 판굿으로 여는 채씨 할아버지는 자신이 치는 굿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이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건강이라면 늘 자신했지만 요즘들어 부쩍 ‘세월’을 실감하는 할아버지의 소망은 따로 없다.
“나도 한 해 소망을 빌었지. 내년에도 ‘둥실둥실’ 어깨춤이 절로 나도록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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