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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⑧ 박정희씨 강력한 라이벌

이철승 서울평화상문화재단이사장

1968년 8월 15일 정정법에서 해금된 나는 다시 민주전선에 몸을 던지기로 했다. 당시 공화당 정권은 이승만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로 3선개헌을 추진하고 있었다. 나는 망명생활을 마치고 막 귀국했을 무렵이었지만 재야와 야당 세력을 한데 묶어 3선개헌반대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조직부장을 맡아 전국을 누비며 범국민적 투쟁에 앞장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개헌안은 불법적이고 변칙적으로 국회 별관에서 공화당 의원 만으로 통과되어 헌정사에 커다란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1970년대 초 신민당 유진산 당수 시절에 김영삼씨가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왔다. 김영삼씨와 함께 김대중, 그리고 나도 40대였다. 나는 오랜 망명생활과 정치규제에서 풀려났기 때문인지 많은 국민들이 성원해 줬다. 그러나 당시 야당에서 박정희와 강력하게 맞설 수 있는 범국민적 단일 야당 지도자를 내세워야 할 시점에서 나온 40대 기수론은 40대끼리 경쟁 분열하게 되어 국민들의 기대에 어긋나게 되는 결과도 불러왔다.

 

여기에서 좀 쑥스러운 이야기를 하려 한다. 당시 내가 전국민적인 조직을 갖고 국민들의 인기가 절정에 달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는 박정희씨가 나를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단정하고 어떻게 하든 나의 조직과 세력을 약화시키려고 갖은 박해와 공작을 하기에 이르렀다. 심지어는 혜화동 내 집에 중앙정보부에서 불을 지르기까지 해서 대통령 후보 지명을 받지 못하도록 공포 분위기를 만들기도 했다. 그 때 대통령 후보 지명권을 가진 유진산 당수는 나를 밀어주겠다고 약속해 놓고 김영삼씨를 지명했다. 당시 유진산 당수는 유한열, 유동렬 등 아들이 금광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진산 당수의 명의로 많은 은행 부채가 있었고 또한 사채가 많아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여기에 중앙정보부가 개입, 부채를 해결해 주고 자금도 제공하며 대통령 후보에 김영삼을 지명하라는 압력까지 했다는 세간의 풍문들이 파다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대중씨가 이에 불복, 대통령 후보는 대의원이 직접 선출해야 한다고 주장해 1970년 9월 29일 지명대회를 열게 되었다.

 

김대중씨는 내게 각서까지 쓰면서 자신을 밀어달라고 간곡히 요청해 왔다. 유진산 당수의 태도에 불만을 가졌던 일부 동지들이 그 요청을 받아들이자고 해 김대중씨를 밀어준 결과 그는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정치는 팔자소관이요, 품앗이"라고 대의원들에게 말하고 지명대회장을 나와 라켓만을 들고 테니스장으로 갔다.

 

1972년 박정권은 이른바 '10월 유신'을 단행해 헌정을 마비시키고 폭력으로 독재체제를 공고히 했다. 1973년 나는 국회부의장이 되었고 김영삼씨는 당수로서 신민당을 이끌어가게 되었다. 당수를 비롯한 당내 강경론자들은 "개헌만이 살 길이다. 민주제단에 피를 뿌리겠다"고 외치면서 국회를 보이콧 하는 등 흑백논리의 초강경 노선을 고집했다.

 

여당은 단독으로 국회를 운영하여 국회는 절름발이가 되었고 야당의 정치적 터전은 뿌리째 흔들리게 되었다. 박 정권은 개헌서명운동을 저지시키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하고 유신정권의 신임을 묻는 국민투표를 강행했다. 이때 강경파가 주도한 야당은 큰소리만 치고 효과적인 투쟁은 못한 채 국민투표만 거부하는 소극적인 대처로 일관하여, 유신체제를 정당화시켜 주는 결과만 가져오고 말았다. 더구나 1974년에는 월남이 패망하고, 그 때 정부는 안보를 빙자하여 '혼란이냐, 안정이냐'를 택일하라고 일방적으로 강요하면서 정권안보에 급급하였다. 그 다음해인 1975년 5월 20일 '박·김 회담'이 열렸고 10. 8에는 김옥선파동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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