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증왕 십삼년 섬나라 우산국 세종실록지리지 오십 페이지 셋째줄. 하와이는 미국땅, 대마도는 일본땅, 독도는 우리땅 우리땅.’
섬나라 우산국은 어디는 말하는 것일까? 세종실록지리지 오십 페이지 셋째줄에는 정말 독도가 우리땅이라고 나오는 것일까?
국립전주박물관(관장 유형식)이 우리 역사 속에 숨쉬고 있는 독도를 재조명했다. 2일 오후 2시30분 국립전주박물관 세미나실에서 열린 특별강좌 ‘우리 역사 속의 독도’.
이상태 연구관(국사편찬위원회 편사기획실)이 강사로 나선 이날 강좌에는 교복 입은 여고생 부터 연로한 몸을 이끌고 나온 노인까지 몰려 일본과 대립하고 있는 ‘독도 영유권 문제’에 대한 관심을 반영했다.
이연구관은 “우산국은 울릉도와 우산도(독도)를 합쳐서 부르는 말”이라며 “신라 지증왕이 이사부를 시켜 우산국을 우리땅으로 병합한 AD512년부터 독도는 우리의 영토였다”고 강조했다. 그는 “삼국사기를 보면 ‘일본’이란 국호는 610년 만들어진 것으로 나온다”며 “일본의 국가체계가 갖춰지기 이전부터 우리는 독도를 우리땅으로 편입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본측 문헌에 독도가 처음 나온 것은 1667년 편찬된 ‘은주시청합기’. 이 책은 독도를 송도로 울릉도를 죽도로 호칭하고 있지만, 독도와 울릉도를 모두 조선의 영토로 인정하고 있다고 있다는 설명이다.
“울릉도와 독도의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청명하면 가히 바라볼 수 있다”고 나와있는 세종실록지리지와 “독도와 울릉도 두 섬이 행정구역상으로 강원도 울진현에 속한 조선왕조의 영토”라고 밝혀놓은 동국여지승람 외에도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만기요람 군정편 등 수많은 문헌사료를 통해 우리 역사 속에 뿌리내린 독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연구관은 근대에 들어 메이지정부가 일본 외교문서 제3권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1869∼1870)를 통해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영토로 인정한 것과 1876년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과 관계가 없는 조선의 영토’라고 일본 태정관이 내무성에 내린 최종 판단 지령 등도 소개했다.
이연구관은 “일본은 우리의 국민성을 잘 알고있기 때문에 독도에 관한 국민들의 여론이 가라앉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며 “국립영토문제연구소 건립을 서두르고 독도에 관한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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