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법의학계에서는 너무도 유명한 말이다.
최근 전주 향교의 목판 정리 과정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완판본 가운데 하나가 ‘증수무원론언해’(增修無寃錄諺解)라는 것이었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검시 지침서로 22가지 사망 원인별로 관찰 사안이 자세히 기록된 '증수무원론언해'는 당대 검시제도가 얼마나 잘 짜여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죽음에 대한 궁금증, 나아가 흥미로운 상상력까지. 법의학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요즘, 출판계에서도 법의학 관련 서적들이 앞다퉈 출간되고 있다.
△죽은자들은 토크쇼 게스트보다 더 많은 말을 한다 (마이클 베이든 지음/ 바다출판사)
사실 법의학은 일반대중에게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전문분야였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흉악범죄가 급증하면서 현대 범죄수사에서의 과학수사는 갈수록 비중이 커지고 있다.
이 책은 존 F. 케네디 암살 사건, 마틴 루터 킹 암살 사건, O. J. 심슨 사건 등 40년간 대표적인 미국의 범죄사건을 ‘과학수사’로 풀어낸 베테랑 법의학자 마이클 베이든이 써내려간 부검 일지다. 법의학계에 아주 중요한 의미를 제공하는 사례들로 가득하다. 재미있기는 하지만 허구를 바탕으로 한 추리소설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사례를 경험하고자 하는, 현실을 바탕으로 하되 지나치게 극적 요소를 강조한 TV 프로그램 또는 영화 등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상상치 못한 또다른 세계를 펼쳐보인다.
△신주무원록 (왕여 지음/ 사계절)
조선 시대에는 죽음에 얽힌 비밀을 어떻게 풀었을까. 「신주무원록」은 조선 초기에 간행되어 영·정조대에 이르기까지 조선 법의학의 기본 지침서로 활용됐던 것으로, 억울함을 없게 한다는 의미로 중국 원나라 왕여가 1308년 기왕의법의학서와 당대 판례들을 참고해 만든 「무원록」에 새롭게 주석을 단 책이다.
오랜 세월동안 법의학 지침서로 사용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검시의 구체적인 절차와 검시 과정의 주의사항 등 행정상의 규칙은 물론 다양한 과학적 지식을 동원해 시체의 검시 방법을 제시해뒀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법의학의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이 책은 법의학서에 그치지 않는다. 사람사는 세상에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범죄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생활사 연구의 자료이기도 하다.
△한국의 시체, 일본의 사체 (문국진·우에노 마사히코 공저/ 해바라기)
일본에서는 사람과 동물을 막론하고 죽으면 ‘사체’(死體)로 표현하지만, 한국에서는 사람의 경우는 ‘시체’(屍體)로 불러 엄격하게 구분한다. 한국인들은 ‘저승에 간 사람을 다시 죽게 할 수 없다’며 부검을 반대하지만, 일본인들은 ‘부검해봐야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는 것도 아니다’고 반대한다.
한국의 대표적 법의학자 문국진씨와 일본의 원로 법의학자이며 작가인 우에노 마사히코(上野正彦)의 대화를 녹취해 묶은 책이다. 죽음을 보는 한·일 양국 국민의 시각을, 그들이 시체를 해부하며 만난 여러 죽음의 사연들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양국 국민들이 갖는 죽음에 대한 시각차이를 비교해볼 수 있는 책이다. 수 천구의 시체를 부검한 법의학자들이 실제 겪은 사건을 바탕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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