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한 일이 헛되었을 때나 무엇이 허술해서 이루어지지 못했을 때 ‘도로아미타불’이라고 한다.
<근원설화>근원설화>
어떤 선비가 친구를 만나려고 한겨울에 말을 타고 강을 건너갔다. 그가 친구집에서 며칠 쉬어 돌아올 때는 날씨가 푹해져 강의 얼음이 엷은지라 말을 타고 건너기에는 위험성을 느꼈다. 그러나 어찌할 도리가 없어 말에서 내려 말에 실은 부담롱을 끈으로 매어 말 뒤에 끌려오도록 끈을 길게 하여 안장에 매달아 중량을 분산해 놓고, 자기도 고삐를 길게 하여 말 앞에서 끌며 강을 건너는데, 그래도 위험한 생각이 들어 “나무아미타불”을 연거푸 염하며 건너왔다.
강기슭 가까이 와서 이제는 강에 빠진다 해도 죽을 위험성은 없다고 느껴지자 유교를 닦은 선비로서 염불을 했다는 것이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지랄이나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중얼거렸다. 그러고 나서 말을 돌아보니 말에 매단 부담롱의 끈이 풀어져 부담롱이 강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게 아닌가. 그러니 자신이 다시 가서 그것을 끌어올 수밖에 없겠는데 아까 “지랄이나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한 죄책감에 아까보다도 더욱 위험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어찌할 도리가 없어 또다시 “나무아미타불”을 연속하며 다시 가서 부담롱을 끌어왔다.
이 이야기는 부묵자(副默子)가 쓴 ‘파수록(破睡錄)’ 중 ‘유견로이(有牽驢而)’로 시작되는 이야기에도 보인다.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