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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포-커버스토리] 조금 만든 만큼 맛 더 깊어짐

순창 적성면 강경마을 박씨부부 자생차밭 이야기

씩씩한 활엽수들 사이에서 또한 씩씩하게 자라난 키 작은 차나무 군락은 황홀했다. 새순 바치고도 한결 건강해진 차나무 잎들은 더 푸르다.

 

넉넉잡아 1만여평에 이르는 순창군 적성면 강경마을 자생차밭은 차인들에게 자생차의 특별한 맛을 전해주는 보고가 됐다. 넓이로만도 좀체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인데다 자생할 수 있는 환경조건이 빼어난 덕분이다.

 

올해 강경마을 자생차밭 차잎 수확은 지난 4월 30일부터 시작됐다. 예년보다 일주일 정도 늦어진 것은 냉해 등 기온변화 때문이다. 그보다 며칠 앞서 구미마을에 들어갔던 박시도씨는 한달동안 이어질 차만드는 일을 위해 땔감을 비롯해 준비작업을 모두 해놓았다.

 

자생차밭의 수확량은 매우 적다. 같은 규모의 재배차밭 수확량과 비교한다면 30분의 1정도에 그친다.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비료를 쓰거나 인공적인 관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 스스로 자랄 만큼 자란 나무로부터 꼭 그만큼한 얻어내는 일은 곧 욕심을 버리는 일과 같다. 수확량에 집착하다보면 자연히 차나무의 생장과 번식을 촉진하는 인위적인 관리가 필요하게 되고, 자생의 가치는 없어지게 된다.

 

인위적인 생장돕기를 철저하게 경계하는 박씨 부부의 강경마을 자생차밭은 모범적으로 지켜지는 차나무 군락이다.

 

1년동안 이 차밭에서 생산되는 차 수확량은 완성품으로 15000g 정도. 100g짜리 차통으로 계량해 150통을 얻는다. 같은 규모의 재배차밭에서 얻는 수확량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본격적으로 차잎따러 나서는 사람들은 많게는 하루 30명, 적게는 10여명이지만 하루 종일 따도 그 양은 한사람당 1kg을 넘기 어렵다.

 

차잎따기는 대개 마을 주민들이 농번기를 피해 동원되기도 하고, 차동호인들의 품앗이로 이어진다. 차수확이 시작된 지난 일주일동안 벌써 여러팀이 품앗이를 위해 다녀갔다. 그 댓가는 자생차밭 햇차의 향긋한 향과 맛을 나누는 기쁨으로 돌려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자생차는 4계절 내내 따로 따로 수확이 가능하지만 박씨 부부는 첫물인 봄에만 차잎을 수확할 뿐 여름과 가을 초겨울의 차잎따기는 하지 않는다. 제 스스로 생명을 틔우고 성장하는 차나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이들 부부는 생각한다.

 

“계절마다 향과 맛이 다르지만 어쩐지 너무 많은 것을 빼앗아간다는 미안함 때문이다”고 정씨는 말한다.

 

가을이 깊어가는 10월이 되면 차나무는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흰색 차꽃이 활짝피면 강경마을 자생차밭은 화려한 꽃무리로 마음을 빼앗는다. 여름과 가을의 차잎 수확을 포기하는 대신 이 부부는 꽃이 떨어지기를 기다려 차씨를 받는다. 받아온 차씨는 겨울을 나는 동안 묻어두었다가 봄이 되면 땅에 뿌려 새 생명을 얻게 된다. 박씨 부부가 관리하는 고창과 순창의 자생차밭에서 얻는 차씨들은 마을 사람들과 차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지거나 내장산 근처 1만여평의 밭에 터를 잡았다. 대개 3개월이 되면 싹을 틔워 자라기 시작하는 차나무는 적어도 5년이 지나야 차잎 수확이 가능하지만 이들은 7년이 될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박씨 부부가 생산하는 강경마을의 자생차는 첫물인 봄에 나는 차다. 햇차의 향긋한 내음도 맑지만 신선한 맛이 그만이다.

 

햇차와 함께 부부가 만드는 또다른 차들이 있다. 발효차인 황차와 일명 떡차라고도 부르는 ‘덩어리차’다.

 

황차는 일반인에게도 알려져 있지만 덩어리차는 생소하다. 모양도 독특하지만 우려내는 방식도 특별해서 좀체 대중화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황차는 덖는 과정이 없이 그 자체로 비벼서 하룻동안 뜨듯한 온돌방에서 발효시켜 건조시키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차다. ‘고뿔차’라고 불리울 정도로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기능이 있어 즐겨찾는 사람이 많다.

 

부부는 이 차 외에도 옛사람들이 즐겨했던 차의 종류를 찾아 재현해낼 생각이다. 우리 차문화의 가치와 역사를 찾는 일 중의 하나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들이 자생차밭을 찾아내고 보존해나가는 과정에는 마음을 함께 하는 차인들이 적지 않다. 구미마을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는 홍순기씨(33)는 제주 출신이지만 자생차밭 지키기에 기꺼이 참여한 차인이고 정씨의 후배인 노은아씨(40)도 시간만 나면 달려와 일손을 돕는 자원봉사자다.

 

“젊은 사람들 차만드는 일을 보니 무슨 고생을 저렇게 즐겁게 할까 싶다”는 집주인 김갑덕 할머니(82)도 이들 부부의 든든한 후원자 .

 

강경마을 자생차밭에 나온 이들의 차잎따기에 행복이 가득 실렸다.

 

그렇고보니 이 부부는 자생차밭 지키기가 이제 시작이라지만, 이미 장거리 달리기의 중반을 넘어선 것이 틀림없다.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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