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군산에서 태어났소. 노래섬, 가도가 있었는데 험악한 서해 바다에 빠져죽는 이들이 많았어요. 가도에서 들리는 파도 소리는 죽은 아버지 소리, 죽은 남편 소리였지요. 지나가는 나그네들은 낭만적 노래라 할 지 몰라도 생과 사를 완전히 가르는 노래입니다. 내가 어린시절 그 노래를 들었는지 혼령들의 소리를 이어받아 지금까지 시를 쓰는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우리 고향 뮤즈가 나에게 시를 쓰라고 한 것 같다는 고은 시인(72)이 ‘시와 고향’을 주제로 전주를 찾았다. 10일 오후 3시 전북대 진수당 최명희홀에서 열린 전주MBC 창사 40주년 특별초청강연. 전주에 내려오다 ‘춘포’라는 간이역을 새삼스럽게 보게됐다는 그는 ‘춘포’라는 시를 꼭 한 번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학교 교과서에서 내 시를 배웠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시는 그런 교과서에 있지 않습니다. 나는 시가 숨쉰다고 합니다. 내가 오만하거나 겸허해서가 아니라 시는 바로 내 심장에서 솟아나는 새로운 소식이기 때문이지요.”
그는 “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어떤 것을 존재화하는 작업”이라며 “그 자체가 생명체이기 때문에 시를 하나의 연구과제로 알고 낱낱이 쪼개고 분석하려고 하면 곧 죽어버린다”고 말했다. 시인은 배워서 쓰는 시는 어쩐지 두들겨 맞추고 기교를 부린 느낌이 난다며 그것이 바로 옛날시와 근대시의 차이라고 덧붙였다.
“내가 특정종교에 삶을 의탁한 것은 내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한때 전쟁과 이데올로기가 내 고향을 깨뜨렸고, 시대에 빨려 흡입되었던 것 같아요.”
한때 일초(一草)라는 법명을 갖기도 했던 그는 “당시에는 언어를 벗어나야 진실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문학과 문자를 경멸하기도 했었다”고 털어놓았다.
“지금 고향은 고향이 아닙니다. 아파트는 서울에도 있고 일본에도 있지요. 현대인은 고향을 잃어가면서 시도 잃어가고 있습니다. 시를 찾기 위해 고향을 찾고, 고향을 찾기 위해 시를 찾아야 합니다.”
본래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 시는 곧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고향은 객관화시켜 바라봐야 한다. 시는 본질적으로 고향을 꿈꾸지만 내 고향과 타인의 고향을 따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시인은 그래서 시는 특수성이 아니라 보편성이라고 말했다.
“단테는 자기 고향인 피렌체 일대 방언으로 시를 썼고 그것이 이태리어의 원조가 됐습니다. 나는 한국어를 지키기 위해 시를 쓰는 사람입니다. 지금은 영어시대라고 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으로 모국어인 한국어를 지켜야 합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시인에게 노벨문학상은 언제쯤 탈 것이냐는 질문이 던져졌다.
“상을 통해 조국과 민족을 세계에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학이 상을 염두에 두면 그 문학은 온전한 것이 아니다.” 시인은 “나한테 그런 언급이 있는 것만 알고 있지 실제 돌아가는 것은 잘 모른다”며 고개를 저었다.
“내 문학은 시시해.”
그는 앞으로 조금 더 사는 동안 좋은 문학을 해봐야 겠다며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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