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늙고 잘 사는게 바로 축복이죠"
'삐르릉'
노트북 화면에 한 인터넷 신문의 쪽지가 끼어들어 왔습니다. 습관적으로 닫으려는 순간 작은 화면위에 두장의 사진이 시선을 끌었습니다. 뭔가 골몰하고 있다가 환하게 웃는 노인의 얼굴. 주름진 얼굴위에 세상의 행복이 놓였습니다.
만 55세 이상만이 치를 수 있는 '인터넷 과거시험'에 응시한 아흔두 살 할아버지의 웃음. 아마 이 할아버지의 행복한 웃음을 만날 수 있었던 독자들은 한번쯤 자신들의 노년을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요 며칠, 노인들을 만났습니다. 모두가 아름다운 노년을 맞고 있는 행복한 분들입니다. 문화유산해설사로, 컴퓨터를 배우고 가르치는 일로, 다시 직장을 얻어 새로운 인생을 사는 일로 하루 24시간이 부족한 분들입니다.
전주 경기전에서 만난 네 명의 문화유산해설사들은 한결같이 '지금이 인생의 가장 행복한 때'라고 말합니다.
화려했던 젊은 시절을 갖지 않았을 리 없지만 이들이 들려주는 노년의 삶은 더 활기 있고 아름답습니다. 젊은 시절을 에둘러 그리워하지도 않고, 깊어지는 노년에 서러워하지도 않는 '젊은 노인'들의 삶을 들여다보니 문득 '잘 늙고 잘 살아가는 행복'을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전히 곱고 아름다운 임계강씨(63)는 항상 웃음 잃지 않고 적극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생에 지금이 가장 젊은 시절인데, 어떻게 이 소중한 시간을 의미 없이 보낼 수 있겠어요."
그렇고 보니 누구에게나 '지금'은 소중한 것입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어서도 그렇지만 '가장 젊은 때'의 의미가 큰 울림으로 옵니다.
노년 전문가 유경씨가 펴낸 행복한 노년을 위한 인생지도 '마흔에서 아흔까지'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아무나 노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질병과 전쟁과 사고에서 일단 살아남아야 노년을 맞을 수 있다. 같이 중년을 보내고 있는 배우자와 친구들, 선후배들 가운데 과연 몇 사람이 살아남아 노년을 함께 보낼 수 있을지 생각하면 나이 듦 자체가 얼마나 무겁고 엄숙한 일인지 깨닫게 된다. 그러니 꽃만 생각하지 말 일이며, 꽃 진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 푸른 잎들에 눈을 돌릴 일이다.'
가슴 뜨거웠습니다.
그랬습니다. 노년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지만 그 노년을 제대로 맞아 아무나 '노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니 노인이 되어 아름다운 삶을 지켜갈 수 있다면 얼마나 더 큰 축복이겠습니까.
경기전 옆 뜰 대나무 숲, 청청하게 뻗어난 대나무 사이 사이로 튼실한 죽순들이 쑥쑥 자라났습니다. 저 죽순들이 제대로 생명을 얻게 되면 청청한 대나무로 다시 하늘을 향해 오를 것입니다. 대나무가 채 되지 못한 죽순이나 곧게 뻗은 대나무가 공존하는 숲은 생명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줍니다.
젊음과 노년, 그 어느 쪽도 모두 축복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대나무 길을 걸어오는 노년의 모습, 더불어 행복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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