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4-12-11 23:31 (수)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문화 chevron_right 문화일반
일반기사

[템포] 60대 전북문화유산해설사 4인방

“아이구 우리가 21일 대나무 밑에서 만났네. 적자가 바로 이것 아녀. 호적 적자. 대나무 밑에 올래자에 입십일일(籍). 우리가 등록하러 온거여.” 마음씨 넉넉하게 보이는 유태길씨의 말에 모두 손뼉을 쳤다.

 

60대 문화유산해설사들이 경기전에 모였다. 전북문화유산해설사회 김남규회장(69)과 유태길(65) 최규태(65) 임계강(63)씨.

 

노년 앞에 ‘싱그럽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지만, 네명의 ‘노년’은 싱그럽고 활기차다.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얼굴을 익힌지 벌써 3-4년. 노년들은 형제나 오누이같다. 한결같이 젊은 시절 번듯한 직장에서 청춘을 바쳤고, 성취의 보람을 남부럽지 않게 찾았던 사람들이다. 그러다 정년을 맞거나 명예퇴직을 했다. 한창 일할 수 있는 나이에 물러난다는 사실이 서럽기도 했지만 지나고보니 자랑스럽게 정년을 맞은 것도, 혹은 일찌감치 명예퇴직을 자처한 것도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2001년과 2002년, 2년동안 배출한 전라북도의 문화유산해설사는 86명. 이들 중 60대를 넘는 해설사가 30명쯤 되니 노년의 세가 만만치 않다.

 

해설사 자격은 일정한 교육 과정을 거치면 얻게 되지만 그렇다고 자격증이 만만하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1기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아 경쟁률이 낮았지만, 2기때는 경쟁률이 2대 1을 넘었다.

 

성당에 다니는 동료들이 권해 별 생각없이 도전했다가 정작 동료들은 탈락하고 혼자만 면접에 합격해 과정을 마친 최태규씨는 별 의지 없이 얻은 이 행운에 더 감사하고 있다.

 

방송인 출신 김남규 회장

 

김남규회장은 방송인 출신이다. KBS전주방송총국 보도국장으로 정년퇴임한 김회장은 현직시절 우리 땅과 문화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프로그램으로 담아냈다. 전북은 물론, 전국의 산과 강을 두루 답사하고 다녔던 그는 문화와 역사에 특히 밝아 회원들에게 ‘21세기의 고산자’로 통한다. 58세 정년을 맞아 현직에서 물러났으니 노년으로 지낸지 10년이 넘었지만 그는 여전히 분주하다. 일주일에 두번씩은 완주군 송광사의 문화유산해설사로, 남은 시간은 등산과 각 모임 활동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올해 초부터는 한달에 한번씩 문화유산해설사 모임의 답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답사 자료를 직접 만들고 안내하는 일까지 도맡아 하는 김회장의 열정으로 회원들은 우리 땅과 문화에 눈을 뜨게 되는 재미가 더없이 크다고 말한다. “노년이라 생각해본적이 없다”는 그는 늘 세월에 도전하며 산다.

 

체신공무원 출신 유태길씨

 

정읍 황토현전적지에서 해설을 맡고 있는 유태길씨는 체신공무원으로 33년을 근무했다. 퇴직한 것이 2000년 말. 그는 세기가 바뀌는 자신의 인생도 새로운 전환점을 찾게 되었다고 말한다. 정읍이 고향인 그는 증조부가 동학군 출신. 어린시절부터 드러내놓고 지내지 못한 집안 내력 때문에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퇴직한 이후 자연스럽게 문화유산해설사 과정을 찾은 것도 그 덕분이다. 일찌감치부터 문화재청 행정모니터 요원으로 참여하고 있었던 그는 문화와 역사의 대중화에 적극적이다. 미처 모르는 것을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틀림없이 이메일을 통해 답을 해줄 정도로 열성적인 그는 방송통신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아들이 88학번인데 나는 02 산소학번이거든? 며느리보다도 학번이 늦어요.” 열정적인 삶은 언제나 즐겁다.

 

비료회사 퇴직한 최규태씨

 

퇴직한 이후 아내를 따라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는 최규태씨. 충주비료를 거쳐 남해화학에서 정년퇴임한 그는 별 의지 없이 문화유산 해설사가 됐다. 전주가 집이지만 그가 근무하는 곳은 남원의 실상사. 일주일에 두번씩 꼬박꼬박 출퇴근한다.

 

“처음 얼마동안은 너무 고되어 그만 둘까도 생각했어요. 근데 갈수록 그것이 아니더라구요. 내 경우는 실상사를 찾는 사람들에게 설명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배우는 것이 더 많아. 전문가들이 많이 찾아오는 사찰이거든.” 가톨릭 신자가 사찰 해설사로 활동하는 것은 어떨까.

 

“관계없지요. 우리 문화를 알리는 일인데 뭘. 근데 실은 나보고 비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에어콘은 왜 시원한 바람을 내는가 이런것 설명하라면 더 잘하겠어. 내가 오히려 배우는 것이 더 많으니 미안해.”

 

다시 웃음이 터졌다.

 

교육행정직 출신 임계강씨

 

임계강씨는 전주를 찾았던 적지 않은 관광객들에게 인상이 깊게 남기는 문화유산해설사로 꼽힌다. 교육행정직공무원이었던 그는 92년 명예퇴직을 신청해 일선에서 물러났다. 쉰살, 한참 일할 나이의 은퇴에 고민이 없지 않았으나 개인적으로 우리 문화에 관심이 많고 취미활동도 넉넉히 갖고 있었던 그는 나이 들어서는 좀더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겠다는 의지를 실천하기에는 용기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박물관 문화강좌는 그가 가장 거의 빠지지 않고 참여해온 ‘일상’이다. 동창회(전주여고 동창회장)나 각종 모임 활동으로 퇴직 이후에 더 활발한 사회활동을 해온 그는 “지금이 가장 보람되고 행복한 때”라고 주저없이 말한다. 60대 중반으로 가는 그가 여전히 곱고 아름다운 이유를 알 수 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