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 전쟁은 그렇게 왔다. ‘멀리 뿌우연 점 하나’로 참으로 허망하게 왔다.
전쟁이 남기고 간 사상과 이념, 이데올로기…. 그것들이 무엇인지 어디에 써먹는 것인지 지금도 알지 못한다는 시인은 뒤늦게 한국전쟁을 풀어놓았다.
조기호 시인(67)의 열두번째 시집 「건지산네 유월」(오감도).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정리하는 기회를 갖고 싶었다”는 그는 이번 시집을 통해 전쟁이 검게 그을리고 간 마음의 상처도 씻겨지길 바랬다.
“내 속에 담아놓았던 것들입니다. 평소 틈틈이 한 편씩 써놓았던 것을 6·25전쟁 55주년 되는 해 풀어놓고 싶었지요.”
이제는 아문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폐부에 깊숙한 상처로 남아있는 전쟁. 그는 전쟁을 모르는 젊은 세대들에게 전라도 땅에서의 6·25 전쟁을 정리해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건지산 품에서 살아온 사람들. 덕진, 진밧다리, 금암동 철길, 북문삼거리, 전주성 등 사실적인 지명들을 옮긴 것도 그 때문이다.
“태어나자 마자 대동아전쟁을 겪었고 초등학교 때는 8·15를 맞았어요. 곧 좌우익의 싸움 6·25전쟁이 터졌으니, 전쟁 속에서 태어나 살아온 우리 세대가 불쌍할 뿐이지요.”
한국전쟁의 비극은 그의 가족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전쟁이 발발하던 해 1학년은 무기방학이라고 좋아하고 5학년은 군번도 없는 학도병이 되어 전선으로 끌려갔다. 조시인의 형 역시 낙동강 전선에서 군번도 없이 총알받이로 죽어갔다.
월급쟁이 출퇴근 하듯 평소 다작을 해온 그이지만, 이번 시집은 더욱 특별하다. ‘형무소 구석구석 죽음이 가득 차 철철 넘치’게 하고 이 땅의 선량한 사내들을 동물로 만들어버린 전쟁은 시인과 같은 세대에게는 ‘상처를 건들어 피가 철철 흐르게 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서정도 서사도 아닌, 그렇다고 내 고장 말을 감칠맛나게 골라서 그려놓은 글도 아닌, 참으로 어정쩡한 시를 내보내게 됐습니다. 그러나 이런 작품은 이번이 마지막일 겝니다.”
시인은 다시 서정시로 돌아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시를 쓰면서도 서정시와 서사시의 경계에서 고민을 많이 했다는 그는 “전쟁이란 역사적 소재를 다루다 보니 서사적인 면이 많이 부각됐다”고 말했다. 그는 어린 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읽을 수 있는 편한 서정시를 쓰고싶어 한다. “사나운 문학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그에게는 “역시 시는 서정시”라는 고집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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