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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포-사람과 풍경] 책과 함께 희·노·애·락

서점역사 산증인 전 홍지서림 대표 천병로씨

홍지서림 3층 책 창고 천병로 대표가 이제는 좀체 찾아 볼 수 없는 나왕목 오래된 책장 사이에 그가 서있다. 책 향기 머금은 책장 나무결마다 그의 손때가 묻어 있다.../안봉주 기자 안봉주([email protected])

지금도 서점안에 들어서면 가슴이 뛴다. 뭔가 할 일이 있을 것 같아 서점 안 이쪽 저쪽 둘러보는 일도 아직은 남의 일이 아니다.

 

청춘을 지나 초로에 들어설때까지 40년, 서점주인으로 한 길 인생을 걸어온 천병로씨(69, 전 홍지서림 대표).

 

“이제 내 일상을 따로 갖게 되었으니 잊혀질 만한데 아직도 서점에 와야 마음이 편해요.”

 

오로지 책으로 삶의 슬픔과 기쁨을 얻었던 그는 이 지역 서점 역사의 산증인이다.

 

“행복하게 청춘을 보냈어요. 모든 운이 다 나에게 닿아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요. 영세한 서점업에서 그렇게 전성을 구가하는 일은 쉽지 않았는데 말년이 아니고는 거의 모든 시기를 어려움 모르고 살았을 정도니까요.”

 

50년대말, 스물세살 세상 물정 몰랐던 청년은 전주의 이름난 책방 ‘문성당’의 사환으로 책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만해도 서점의 주 수익원은 참고서. 서점 총무일을 맡아 전주 시내 각급 학교를 찾아다니며 영업에 매달리는 동안 성실함과 인사성 밝은 청년은 하루가 다르게 인간관계과 견문을 넓혀갔다. 그는 ‘독립’을 꿈꾸기 시작했다.

 

서점 사환으로 일을 시작한지 5년, 1963년에 그는 자신의 책방을 얻었다. 전주시 경원동 동문사거리의 모퉁이에 다섯평 남짓한 가게를 얻어 차린 책방은 온전히 그의 삶이고 미래였다.

 

60-70년대만 해도 출판시장은 참고서 및 교재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일반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문학류라고 해보았자 번역물에 의존한 몇종이 전부. 지역의 서점들에게는 참고서를 내는 출판사 본사와 특약을 맺고 책을 확보해야만 수익보장의 창구를 얻을 수 있었다.

 

이제 막 시작하는 조그만 서점과 직거래를 하겠다고 나서는 출판사를 만나기 어려웠지만 ‘성실하게 일하면 된다’는 의지와 열정이 닿아서였는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출판사 ‘일지사’의 판권을 따냈다. 서점이 활기를 얻기 시작했다. 새벽 6시면 문을 열고 자정이 넘어서야 책방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호황이었다.

 

시내의 학교들이 ‘홍지’를 찾기 시작하고, 매출이 늘어나면서 내로라하는 출판사들이 총판권을 주기 시작했다. 당시 전주시내에는 육서점과 삼흥서관, 문성당을 비롯해 10여개가 문을 열고 있었지만 ‘홍지’는 금새 매출 신장 선두에 섰다.

 

70년, 홍지는 50평 규모의 서점으로 변신했다. 당시만해도 아스팔트조차 깔리지 않았던 시절, 지하까지 파들어가는 홍지서점의 건물을 짓느라 동원된 포크레인은 동네사람들의 큰 구경거리가 되기도 했다. 교재전문서점에서 교양서적과 전문서적을 갖춘 종합서점의 면모를 갖추면서 홍지서림은 책에 목말라하던 사람들에게 책읽는 즐거움을 알게 해주는 공간이 되었다.

 

81년, 홍지서림은 동문사거리 시대를 마감하고 현재의 위치에 번듯한 건물을 지어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70-80년대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세대들에게 전주 홍지서림과 그 옆 아리랑 제과점의 ‘각기우동’은 얼마나 그리운 추억인가.

 

고난은 절정의 고비에서 찾아왔다. 동생의 사업에 조금씩 도움이 되어주던 그에게 어려움이 닥쳤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1997년 IMF의 한파가 불어닥쳤다. 이듬해 3월, 남의 일 같던 ‘부도’ 를 홍지서림도 피할 수 없게 됐다.

 

“경매가 시작되고 세차례의 유찰을 겪는 동안 저에게는 재산을 날린다는 안타까움보다 직원들에게 약속했던 서점의 법인화를 지키지 못한 아픔이 더 컸어요.”

 

함께 일구어온 서점을 법인화 해 주식의 절반을 직원들에게 나눠주겠다는 계획은 결국 물거품이 됐다.

 

소설가 양귀자씨에게 서점을 넘겨주고 난뒤에도 한동안 서점 운영에 참여했던 그는 2003년 완전히 손을 떼고 자유로워졌다.

 

아직도 책의 향기를 잊지 못하고 있지만 그는 아내와 함께 스포츠댄스도 배우고, 등산도 다니면서 일상의 활기를 얻고 있다.

 

‘이제 홀가분하시느냐’고 물었더니 금새 얼굴이 어두워졌다.

 

“홍지는 지역이 키웠습니다. 그런데 그 빛을 제대로 갚지 못했어요. 그나마 새주인이 역할을 잘 해주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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