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상당한 지위에 있는 중년 남녀가 모여 세상 돌아가는 일을 이야기하면서 일어난 일이다. 국민들의 신뢰를 누가 많이 받고 있는가를 이야기하던 중 평소 차분하고 말수가 적은 한 여자 교수가 ‘정말 우리 나라 사람들, 남 잘하는 것 인정해주어야 해요!’라고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점잖은 노교수님이 갑자기 감격해하면서 ‘맞아요, 우리 나라 남자들 요즈음 너무 불쌍하고 힘들어요. 얼마나 고생하는데, 인정해주어야 하고 말고요.’라고 말씀하셨다. 모인 사람들의 대화는 갑자기 대한민국 남자의 현주소에 관한 것으로 급선회했고, 아무도 어떤 대화가 진행중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듯 했다. 말을 꺼낸 여자 교수조차 ‘그게 아니고요.’라고 설명할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진지한 분위기가 되고 말았다.
‘남 잘하는 것’이라고 하는 말이 ‘남자라는 것’으로 잘 못 들리면서 일어난 작은 해프닝이었다. 헤어질 무렵, 그 대화가 급선회된 내용을 알고 있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 진상을 이야기하자 그제서야 모두들 박장대소를 하면서도 도대체 남자들이 왜 ‘남자라는 것’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말에 그렇게 순간적으로 감격 했는지 서로 안쓰러워 하기도 하였다.
남자로 산다는 것. 참 힘든 일이다. 여자보다 더 많이 참아야 하고, 더 많이 의젓해야 하고, 더 책임도 많아야 하고,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도 더 많고.......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 보면, 여자를 ‘남자가 참을 수 없게 하는 일을 하고, 근본적으로 가볍고, 무책임하고, 할 수 있는 일의 한계가 설정되어 있는 존재’로 한정지어 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이렇게 많은 형용사들이 붙어 버렸다.
그러나, 사람도 엄청 많고, 해야할 일도 엄청 많은 이 다원화된 세상에서 개개인의 적성과 하여야 할 일의 특성을 제쳐두고, ‘남자는 어떻고, 여자는 어떻다’라는 관념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여 본 사람은 없는 것 같다. 풀어야 할 과제의 특성에 맞고, 능력이 탁월하다면, 그 성(性)이 무엇인가를 묻기 전에 그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적임자로 평가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것이 ‘남자라는 것’을 인정받기 위하여 중년 사망률 세계1위라는 건강상 위험까지 안고 있는 남자들을 그들이 부담하고 있는 많은 짐으로부터,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업무가 한정지워지는 우리 나라 여자들을 그들이 겪고 있는 박탈감으로부터 해방하는 길이 될 것이며, 오히려 가사 노동의 중요성을 재평가하는 계기도 되리라 생각한다.
따라서, 이제는 ‘남자라는 것’ 또는 ‘여자라는 것’보다는 ‘남 잘하는 일’을 찾아 한 사람 한 사람을 적재적소에 맡게 배치하여 우리 사회의 공동선을 추구하여야 한다. 다만, 아직 ‘남자가 하여야 할 일’과 ‘여자가 하여야 할 일’에 대한 구분이 엄격하신 어르신들에게는 다소 불편함이 있을 것이고, 나 자신 아직 그러한 한계를 완전히 극복한 사람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다음 세대를 위하여서도 ‘남자라는 것’을 강조하기 보다는 ‘남 잘하는 일’을 찾아 그 능력을 높이 평가하도록 하는 노력과 교육을 게을리해서는 안되겠다.
/오대규(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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