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고 귀한 경치 가까워서 부담 없어
언제 봐도 마음이 탁 트이는 바다를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한국관광공사가 8월의 가볼만한 곳으로 꼽은 부안 내변산 월명암과 낙조대를 향하는 길이었다.
외변산은 해수욕장과 바다의 풍광으로 잘 알려져 있고 내변산 또한 절경이 많아 변산반도국립공원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산악과 바다를 한꺼번에 가진 국립공원이다. 아이들과 함께 지난 주말 평소 꼭 가보고 싶었던 월명암과 낙조대로 향했다.
여름 피서철이 한창이어서 차량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으나 바다의 시원한 바람과 백사장, 어선, 섬 등이 어우러진 풍광은 교통체증을 대수롭지 않게 만들었다. 변산해수욕장에서 월명암 표지판을 보고 도착한 곳은 남여치 매표소였다.
한낮의 땡볕을 피해 오후 4시쯤 초등학교 5학년인 딸과 2학년 아들, 아내와 함께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등산로 입구의 표지판에 고라니 족제비 멧토끼 오소리 꿩 산까치 박새 너구리 등의 야생 조수 보호구역이라고 쓰여 있어 혹시 이들 동물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가지게 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측에서 등산로 주변 나무에 굴피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삼나무 맡배나무 리기다소나무 쇠물푸레 등 수십가지 나무의 이름과 특성을 적어 놓아 아이들이 이를 읽느라 바빴다.
그렇다. 나는 나무 이름도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예수님이 운명하셨다 하여기독교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산딸나무를 보면서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숨을 헉헉거리고 비오듯 땀을 흘리며 25분쯤 가파른 등산로를 치고 오르니 이후에는 비교적 평탄한 길이 나왔다. 평소 별로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 기자로서는 산을 탄다는 것이 힘든 일을 하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아이들이 한마디씩 던지는 말은 가족 산행의 기쁨을 만끽하게 했다.
“아빠. 산에 있는 돌은 밑에 있는 돌과 다른 가요” “엄마. 버섯이 크레파스에 있는 오렌지색깔처럼 너무 이뻐요”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달래며 얼음물 4병을 다 비울 때 쯤, 출발한 지 1시간이 조금 지나 월명암에 도착했다. 스님들이 공부하는 도량답게 고요한 월명암은 그 자체가 주는 아늑함이 남달랐고 월명암에서 바라보는 내변산의 풍광이 빼어남을 자랑했다.
병풍처럼 산이 펼쳐져 있고 크고 작은 바위가 점점이 박혀 있어 한참을 바라보며 참 멋지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월명암에서 만난 원담스님은 “안거하며 참선하고 있다”고 말해 아이들에게 안거와 참선의 의미를 설명하는데 애를 먹었다. 이 또한 교육이 아니겠나 싶어 속으로는 기분이 좋았다. 절에서 주는 삶은 옥수수 하나를 나눠먹는 재미도 솔솔했다.
물병을 채우고 낙조대로 향했다. 안내판이 없어 약간의 고생을 했지만 ‘감각적으로’ 낙조대를 찾았다.
낙조대. 이름처럼 거창한 곳은 아니었으나 귀하고 소박한 곳이었다. 능선의 바위 앞에 있는 조그마한 공간이었으나 낙조대라는 이름이 잘 어울렸다.
산과 들, 바다와 섬이 한 눈에 보이는 평화로운 경치를 선사했다. 과연 이 곳에서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면 절로 감탄하겠다는 짐작이 갔다. 다음에 이 곳을 찾는다면 일몰시간에 맞춰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아니나 다를까. 하산길에는 낙조대에서 일몰을 보려는 듯 적지 않은 등산객을 만날 수 있었다. 7시쯤 주차장에 돌아왔으니 아이들과 함께 쉬엄쉬엄 다녀온 셈이다. 보통 사람들은 왕복 2시간 가량이면 충분하다.
도내에서 멀리 갈 수 없고 바다와 해안가, 등산의 묘미를 함께 맛보는 곳으로 딱이었다. 컴퓨터게임에만 몰두하려는 아이들에게도 그만이고 드라이브의 즐거움도 선사했다. 기름값외에 별다른 비용이 들지 않았으니 서민들이 여가를 알차게 보내기에 좋은 곳이다. 특히 손전등이 준비된다면 낙조를 본 후 ‘탄성을 질러도 괜찮고’ 야간 하산이 위험하지 않을 듯하다.
변산반도 이렇게 가보자
월명암 낙조대만이 목적지라면 해안가 도로를 타고 변산면 소재지 입구에서 월명암 표지판을 보고 다녀온 다음 중계쪽으로 오면 내변산의 아름다움이 펼쳐진다.
시간 여유를 충분히 가져 외변산에 유료도로(왜 돈을 받는지 모르겠지만)를 타고 바다 위를 달리는 기분을 느껴보자. 이 도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중의 하나로 꼽혀도 손색이 없다.
불멸의 이순신 드라마 촬영지인 격포 일대에서 거북선을 비롯 임진왜란때 쓰였던 판옥선 등 여러 가지 배도 구경하고 참으로 운이 좋아서 촬영현장을 접한다면 제대로 관광한 셈이다. 성웅 이순신의 ‘한산섬 달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라는 시에 나오는 수루에(비록 드라마세트장이지만) 들러 500여년전에 나라를 구한 불세출의 명장의 심경을 헤아려 보는 것도 좋다.
격포에 있는 영상테마파크가 개장돼 난타공연 마상쇼 등 다양한 콘텐츠가 구비돼 있으니 단순하게 관람만 하는 지루함도 덜 수 있다. 조선의 왕궁이 재현된 영상테마파크는 역사를 공부하기에 적합하다.
관광지의 음식값은 비싸다는 선입견이 있지만 부안은 그렇지 않다. 순박한 사람들의 인심이 먹거리에 잘 나타나 있다. 아무리 입맛이 까다로워도 낭주골 부안의 음식은 누구에게나 만족을 준다. 산과 들, 바다가 어우러져 생거 부안으로 불렸듯이 풍부한 특산품이 음식문화를 발달시켰다.
특히 생선회는 도시에서 먹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맛을 내고 내변산 도로변에 있는 가든이나 산장, 농장 등의 음식점은 어느 곳에 들러도 자연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일식(一食)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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