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가 있다. 서른이 된 주인공은 사랑의 쓴맛을 알게 되면서 “내 인생의 봄날이 가고 있다”고 고개를 떨군다. ‘봄날은 간다’가 지나가는 사랑을 이야기했다면, ‘사랑니’는 서른이란 나이에 불현듯 찾아온 사랑을 들춰낸다.
서른은 여자에게 무슨 의미일까. 이제는 부끄러움도, 어설픈 순진함도 모른다. 그렇다고 닳고닳은 건 아니다. 꽉찬 어른이지만 뭔가 아쉬울 때가 서른이다. 오죽하면 김광석은 ‘서른즈음에’라고 노래했을까. 그런 서른살에 풋사랑이 찾아왔다. 김정은에게 말이다.
수학강사인 인영(김정은)은 외제차도 동거중인 남자친구도 있다. 수학공식처럼 분명하고 현실적이다. 어느날 학원에서 첫사랑을 빼닮은 열일곱살 짜리 제자를 만난다. 그러다 그만, 13살이나 어린 제자와 주체할 수 없는 사랑에 빠져버린다. 인영이 17살때 만났던 첫사랑 남자(이석)와 이름도 같다. 우연의 일치인지, 제자 이석의 여자친구는 이름이 인영이다. “내가 미쳤지, 어린애를 데리고 무슨 짓을 한거야”라면서도 인영은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제자와의 사랑에도 거리낌이 없다. 함께 차도 마시고 모텔도 드나든다. 어린 연인과 사랑을 나누고 “걔는 왜 해도 늘지를 않을까”라고 혼잣말로 되뇌인다. 누군가의 추궁에 “사람이 사람 때리는 게 나쁜 짓이지, 누구랑 키스하고 싶은 게 나쁜일이냐? 누군가를 사랑하는 게 왜 나빠?”라고 맞받아친다.
‘사랑니’는 너무 늦게 찾아온 사랑을 외면하지 않는 멜로영화다. 어쩌면 ‘역원조교제’라고 치부했을 소재인데도 이맛살이 찌푸려지지않는다. 영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17살의 이석·인영과 서른살의 이석·인영이 교차하면서 추억과 현실을 넘나든다. 무엇이 회상인지, 실재인지를 구분하기가 어렵다. 이같은 과거와 현재의 모호함 속에서 한동안 잊어버렸던, 누구나 가슴속 깊이 묻어둔 첫사랑(어쩌면 풋사랑일지도)을 꺼낸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사랑의 기억은 있다’고 속삭인다.
여강사와 남학생의 사랑이야기라는 사회적인 금기를, 그것도 파격적인 불륜을 그린 ‘해피엔드’의 정지우 감독이 연출했다는 점에서 ‘뭔가 짜릿한 영화’를 떠올렸다면 오산이다. 15세 관람가로, 흔한 정사씬도 없다. 마지막으로 ‘사랑니’가 성공한다면, 그건 김정은의 힘이다. 그동안의 코믹연기를 버리고 사랑인지 추억인지 모호한, 세밀한 감정연기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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