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동안 하루도 쉬지 못했다. 이른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이어지는 표구 작업은 고된 노동이었다. 생계만을 위해서라면 며칠 일을 밀쳐두고 싶었다. 그래도 꼼짝없이 표구에 매달렸던 것은 표구업에 종사해온 삶에 의미를 남기기 위한 선택이었다.
표구사 고석산방의 김대현 사장(61). 모처럼 두손 놓고 있는 그는 한가해보였다.
"이제 한숨 돌릴만 합니다. 그동안 꼬박 서예비엔날레에 매달리다보니 일이 많이 밀렸어요. 그래도 당분간은 쉬엄 쉬엄 할 생각입니다." 쫒기듯 긴장속에서 지냈던 서예비엔날레 출품작 표구작업으로 일상의 리듬을 놓쳐버린 후유증이 크다고 그는 말했다.
김사장이 올해 작업한 분량은 190점. 서예비엔날레 첫해부터 출품작 표구를 도맡았던 그는 갈수록 다양해지는 작품의 형식에 나름대로 노하우가 쌓이지만 올해는 유난히 어려운 작품이 많았다고 말했다.
"아시아권이 아닌 나라의 작가들은 표구에 대한 이해가 없습니다. 화선지에 싸인펜이나 다른 물감으로 싸인하는 일도 많고 물기가 닿기만해도 번지는 소재의 활용도 적지 않습니다. 표구에는 경계의 대상들이죠."
올해는 유난히 실험적인 작품이 많았다. 몇차례 행사를 치러오는동안 터득한 방식이 아니었다면 아예 작품을 통째로 날릴뻔한 경험도 있다.
"겉으로 보기에 괜찮겠다 싶었지만 '혹시' 하고 물기를 넣었더니 옆으로 확 번지는 거예요. 아찔 했죠." 외국작가들의 작품 표구에는 동원되는 도구와 소재가 많다. 아예 배접이 불가능 한 경우도 있고, 싸인 부분과 따로 분리해 배접하거나 마무리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는 서예비엔날레 출품작을 표구하느라 인근의 50평 건물을 따로 빌려 사용했다. 일이 밀려도 좀체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는 성격이지만 함께 일했던 직원들을 여러명 동원했다.
"표구는 작품에 옷을 입히는 과정입니다. 이른바 완성의 단계죠. 그러니 어떤 작품이라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그의 표구업은 올해로 꼭 30년째다. 특별히 사사한 스승은 없었으나 60년대 병풍을 제작 했던 누나 덕분에 표구기술을 익힌 그는 군대 제대한 직후 표구사를 열었다.
기계표구가 관심을 모으고 있지만 그는 손으로 하는 전통표구만을 고집한다.
"표구의 생명은 정성입니다. 예전에는 한 작품을 표구하는데 적어도 20일 이상 걸렸습니다. 풀기를 빼기 위해 이슬을 맞히고 바람을 쐬었죠. 그래야만 습기를 담고 마르고 하면서 그 자체로 내성을 갖게 되거든요."
마음은 전통적인 방식을 지키고 싶지만 '빨리 빨리'문화에 젖어버린 현대인들에게 그가 권하는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표구는 장식이 아닙니다. 작품을 완성시키는 창작의 과정이죠."
그는 한지 제작자 못지 않게 국산한지의 부활을 기대하고 있다.
"표구를 하다보면 작품의 보존 기간을 대략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단언컨대 요즈음 쏟아지는 수입 화선지는 몇십년 가기도 힘듭니다. 정성을 들이다가도 힘이 빠지는 이유예요."
그의 옆에는 30여년 함께 일을 도와온 아내 최순옥씨(54)가 있다. 그 못지 않게 표구기술이 뛰어나지만 최씨는 '영원한 보조'라고 말한다.
김사장이 배접해놓은 작품을 다시 꺼내 들었다. 최씨가 작업대를 붙잡았다. 한눈 팔지 않고 한길 걸어온 부부의 선택이 즐겁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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