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은 올해도 한국을 비켜갔다. 어느 해보다 수상의 기대가 한껏 고조되었던 터라 그 후유증이 적지 않다. 한국은 왜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는 것일까.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에는 한국 문학의 수준이 아직 미천해서 일까,혹은 번역의 문제 때문일까.
혹자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으로 선정된 한국이 지난 3월부터 9월까지 7개월동안 80여명의 작가들을 독일로 보내 낭송회를 개최하는 과정에서 우리끼리 과당 경쟁을 벌인 자책적인 결과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해답은 의외로 스웨덴 한림원의 과도한 정치성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 12일 BBC,더 타임스 등 영국언론들은 올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가 일주일 늦어진 것을 두고,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53)을 수상자로 선정하는 문제에 대해 한림원 심사위원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났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현재 ‘터키 국가정체성 부인’ 혐의로 기소돼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오르한 파묵을 수상자로 선정하는데 있어 한림원 의원들 사이에 ‘정치적 논란을 피하자’는 입장과 ‘문학은 문학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 충돌했을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파묵은 시리아 출신의 시인 아도니스,그리고 한국의 고은 시인과 함께 올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명된 비서구권 출신 작가다. 노벨문학상 역대 수상자 101명 가운데 구미 문학인들이 86명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서구 중심으로 치우친 것이 사실이어서 올 노벨문학상이 비서구권에 돌아간다면 이들 3명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부상했었다.
그러나 파묵은 지난 2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터키는 쿠르드인 3만 명과 아르메니아인 100만명을 학살했지만 그 누구도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해 ‘국가정체성 부인 및 이미지 훼손’ 혐의로 검찰에 의해 기소된 상태로 오는 12월16일 재판을 앞두고 있다. 영국언론의 보도는 스웨덴 한림원이 이같은 정치적인 상황을 무시못할 변수로 고려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일부 문인들은 스웨덴 한림원의 선정이 너무나 일방적이며,노벨이 유언에서 남긴 ‘가장 이상적인 경향의 작가와 작품’에 대한 시상이라는 대명제에 많은 의구심을 가지기도 한다. 스웨덴 한림원의 18명 회원들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결정하는 과정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몇몇 회원들은 개인적으로 특정 작가를 선호하여 가령 200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중국 출신의 극작가 가오 싱젠이 선정됐을 때 한림원 회원이자 중국 전문가인 고란 말름크비스트가 바로 가오 싱젠의 번역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영향력 있는 한림원 회원이 작가의 수상을 저지한 경우도 있다. 보르헤스의 경우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와 악수하는 사진 한 장이 노벨상 수상을 불가능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20세기 세계 문학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프루스트나 제임스 조이스,카프카,헨리 제임스,콘래드,로렌스,가르시아 로르카,조지 오웰,브레히트와 같은 거장들은 노벨상 수상의 영예를 얻지 못했다. 물론 그 연유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스웨덴 한림원이 수상 작가와 그의 조국이 처한 정치상황을 매우 중요한 변수로 고려하고 있다는 개연성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문학평론가 최원식 교수(인하대 국문과)는 올 노벨문학상이 영국의 극작가 해럴드 핀터에게 돌아간 데 대해 “핀터에게 줄 바에야 그의 대표작인 ‘결혼파티’가 세계 각처의 연극 무대에 올려지던 1970년에 주어졌어야 마땅하다”며 “비서구 지역 작가를 찾다가 여의치 않으니까 핀터에게 방기하듯 주어버린 것 같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이어 “노벨문학상이 한국 작가에게 주어지려면 한반도의 정치 상황에 획기적인 계기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니냐”며 “남북통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휴전 협정이 정전협정으로 바뀌는 국제정세의 흐름 같은 걸 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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