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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문단] 그릇

2005 석정문화제 장원

이십 이년 전

 

가지런히 포개져 보따리에 싸여 온 몸은

 

매끄럽고 빛이 났을게다

 

고향을 떠나 새 터로 오던날

 

이 한몸 닳아 없어지는 그때까지

 

잘 살아보리라 다짐도 했겠지

 

새 그릇 만지는 손길이 으레 그렇듯

 

조심스럽고 한편으론

 

간지럽게 다뤄졌을테지만

 

처음만한 것도 없다고

 

단물도 금방 빠졌을게다

 

감당할 수 있을까 싶은 뜨거움이 있는가 하면

 

때로는 산산이 조각날 듯 섬뜩한 차가움이 엄습하고

 

매운 퐁퐁물이 새된 기침을 끌어내고,

 

어린애들의 길들여지지 않은 포크질이 온 몸을 할퀴기도 하고 부대끼고 살던 옆짝은 술독에 빠져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온 짐을 떠맡기니

 

저녁마다 남몰래 받은 눈물이 몇 사발이냐

 

제 몸을 빚어낸 세상을 원망하며 지새운 밤이 몇 광주리랴

 

그래도 아침은 썩지 않아서

 

눈물을 말리고 밤을 쫓겠거니

 

이것이 천명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후련한 웃음 지으며 제 몸에 무게를 싣기 시작하는

 

이제는 이가 빠져 윤기마저 잃은 그릇을 닦으며 눈가를 붉혔다

 

/임유진(우석대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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