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례나 환갑 등 잔치때나 먹었던 ‘고급음식’국수가 이제는 너무도 평범한 음식이 되어버렸다. 동네마다 하나쯤은 국수집이 자리잡고 있어 저렴하고 쉽게 맛볼 수 있는 국수. 잔치국수, 비빔국수, 해물국수, 김치국수, 칼국수, 메밀국수…. 그 종류도 다양하다.
하지만 너무 평범해진 탓일까. 맛도 평범하다. 어느 곳을 들어가도 그럭저럭 맛은 있지만 ‘특별한’맛을 가진 곳은 찾기 어렵다. 국수맛이 얼마나 다르겠냐 생각하겠지만 그 미묘한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아직 한번도 맛 보지 못했다면‘이조국수’(대표 김창영)에서 그 차이를 느껴보자.
간판도 없고 메뉴판도 없다. 주인장이 한지에 대충 써서 벽에 붙인게 메뉴고 간판이다. 도로변이 아닌 골목에 위치해 있어 찾기도 쉽지 않다. 특이한 인테리어를 한 것도 아니고 서비스가 좋은 것도 아니다. 그래도 이곳은 항상 손님들로 북적거린다. 그 이유는 뭘까.
“옛날 어머니가 하신 방식대로 하는 거죠. 집에서 먹는 것처럼…. 그래서 간판도 안 달았습니다.” 주인장의 말처럼 이 집의 대표메뉴 잔치국수에 특별한 재료는 보이지 않는다. 이것 저것 화려한 고명도 없다. 채썬 호박과 당근, 파가 전부다. 하지만 국수맛은 그야말로‘예술’이다.
국수의 맛을 좌우하는 국물은 시원하고 깔끔하다. 조미료를 쓰지 않기 때문에 처음 먹는 사람은 밋밋하게 느낄 수도 있지만 먹다보면 그 개운한 맛에 빠져들고 만다.
“마른멸치, 숙성멸치, 액상멸치를 따로 가공해서 12시간 이상 푹 끓입니다. 3가지 멸치를 넣는 양과 끓이는 온도를 맞추는 게 중요하죠.” 주인장이 매일밤 문을 걸어 잠그고(?) 재료를 준비해 다음날 아침까지 끓이는 육수는 새벽에 일어나 불 세기를 조절해 줘야 한다. 그의 노력이 대단하다.
면발은‘입에서 녹는다’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가늘고 부드럽다. 이 면발을 만들기 위해 주인장은 전국 방방곡곡 잘 만드는 국수공장을 찾아 다녔다. 지금은 천안의 공장에서 강력분, 박력분, 염도, 반죽시간 등 주인장이 주문한 그대로 매일 공수해온다. 가져온 소면은 6개월 이상 적정한 온도로 숙성을 시킨다. 바로 뺀 면은 밀가루 맛이 나고 깊은 맛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반찬은 양념간장, 김치, 청양고추뿐이다. 하지만 불필요한 반찬이 많은 것보다 제대로 된 한두가지 반찬이 더 정겹다. 적당히 익힌 김치, 적당히 매운 고추는 국수와의 조화가 너무나도 훌륭하다. 간장은 주인장의 고향 부안 상서에서 직접 메주를 쒀 만든 것이다.
“저희 가게는 영국여왕이 식사하러 오셔도 위생검사에 통과할 겁니다. 김치, 된장, 간장 모두 직접 만든 것이기 때문에 위생상태 99.9%를 확신하죠.” 그의 말이 웃기면서도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주방을 완전히 노출시킨 것도 자신감의 표현이리라.
국물이든 사리든 ‘무한리필’이지만 국수값은 단돈 2000원. 가격은 너무 저렴하지만 정성은 너무 값 비싸다.
“많이 파니까 남기야 하죠. 저희집이 싼 게 아니라 다른 식당들이 너무 비싼 겁니다.”주인장의 대답이 너무 솔직하다. 장사꾼이지만 장삿속이라고는 없어 보인다.
“국물은 그릇채 들고 후루륵 마시세요”, “100년간 메뉴고정", “가족간 많은 대화를 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가끔 여행을 하는 사람은 무료" 등 식당 곳곳에 한지로 써 붙인 글귀가 재밌으면서 인간미를 느끼게 한다. 깔끔한 국수맛과 함께 이조국수만의 색깔을 입히는 또 하나의 장치이다. 문의 242-0036.
(메뉴) 잔치국수- 2000원, 비빔국수-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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