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번 이상 산행 5년간 산에서 살기도"
가을 내장산은 몸살을 앓는다. 단풍구경 인파가 몰리면서다. 평상시 자동차로 20여분 거리인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내장산 입구까지가 가는 길이 단풍 절정기엔 3∼4시간씩 걸린다. 단풍 때문에 톨게이트가 옮겨졌을 정도다.
단풍철 큰 맘 먹고 가야 하는 내장산을 5000번 이상 오른 사람이 있다. ‘내장산 지킴이’ ‘내장산 산신령’ 별명을 갖고 있는 이기영씨(70). 60년대 후반부터 정읍에서 치과의사로 생활해온 이씨는 본업보다 ‘산 사나이’로 더 유명하다. 그는 젊은시절 가졌던 여러 직함들을 모두 털어냈으나, 자신이 만든 정읍산악회장과 내장산자연생태계보존협회장 직함은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내장산의 산증인인 그의 이력은 곧 내장산의 역사다. 그와 내장산과 인연은 6.25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쟁 당시 정읍농고에 다녔던 그는 전쟁 후 폭격으로 쑥밭이 된 내장산 절과 단풍나무를 보게된다.
폐허가 된 내장산을 안타깝게만 생각했지 학생 신분의 그로선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그가 다시 내장산과 만난 것은 서울대 치대를 졸업한 뒤 정읍에 정착한 뒤였다.
67년 산악회를 조직한 그는 내장산 탐사활동과 함께 산 가꾸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봄철 나무심기와 겨울 적설때 새 모이주기가 연례행사였다. 벽련암 입구와 천하대장군이 서 있는 지역에서 자라는 고로쇠 나무 등이 이들 산악회에서 심고 가꾼 나무들이다. 자연보호감시관 ·명예감시관의 ‘완장’도 찼다.
90년대 중반 토끼 500마리를 내장산에 풀어놓는 ‘엉뚱한 짓’도 했다.
“내장산은 단풍도 많지만 조릿대도 많아요. 단풍나무 씨앗이 날리더라도 조릿대 때문에 발아가 안돼 토끼로 뜯어먹게 하려는 생각이었습니다.”
매주 2차례 이상 내장산을 오르내려온 그는 그것도 성이 덜 차 지난 95년부터 5년간 정읍시내에서 생활을 접고 아예 내장산으로 들어갔다. 정읍시청에 걸려있는 지점토로 만든 내장산 모형도가 그때 만들어진 작품이다. 산속 곳곳을 다니면서 실측한 그의 땀이 여기에 묻어있다.
5000번 산행에 에피소드가 없을 수 없다. 임산부가 등산하다 산끼가 있어 후송한 일, 조난자를 구출하고 취중 등산객을 병원으로 옮긴 일 등을 파노라마로 떠올렸다.
그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곳은 서래봉. 해발 600여 미터의 바위산에 1킬로 가까이 늘어선 능선을 따라가다 보면 모든 시름을 잊게 된단다.
내장산의 옛날과 현재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단풍나무 수종이 많이 늘었고, 풍경도 좋아졌다고 했다. 단풍 절정기는 조금씩 늦어졌다. 60∼70년대 10월24일경이 절정이었으며, 지금은 11월초가 절정이다.
내장사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 심어진 108주가 이루어내는 단풍터널이 최고의 풍경으로 꼽히지만, 그 단풍이 없어지면 백련암 옆으로 월령봉 가는 쪽의 단풍구경을 권했다. 단풍터널보다 시기적으로 성숙기가 늦고, 티없이 맑은 진홍빛이 석양녘 일품이란다.
지금도 1주일에 1번 이상은 내장산을 찾는 그는 산을 찾을 때 대중교통을 이용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혼잡한 교통도 교통이지만, 그래야 제대로 풍경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다. 단풍나무가 다치지 않게 좀 떨어져서 경내버스가 운행됐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이야기했다.
그는 단풍나무를 끊어 모자에 끼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카메라를 들이댄다. 셔터를 누르지만, 그 안에 필름은 없단다. 경각심을 주려는 ‘내장산 지킴이’의 소박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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