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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포-사람과 풍경] 지역발전 열망 끝내 물거품

짧지만 길었던 62일 방폐장기록

방폐장 찬성단체회원들이 기형태아사진의 선거공보물 삭제를 요구하는 시위(위)와 군산반핵대책위의 방폐장 유치반대 집회모습. ([email protected])

62일 밤낮.

 

2003년과 2004년 신시도와 어청도에 대한 논의까지를 포함한다면 군산방폐장의 기록은 더 길어진다. 시민 10명 중 7명이 투표에 참여하고, 그 가운데 10명중 8명이 넘게 유치를 희망한 방폐장은 이제 군산지역에 ‘갈등치유’만을 남기고 역사속 기록으로 남게됐다. 산자부에 방폐장 유치신청을 한 8월31일 이후 62일동안의 기록을 되짚어봤다.

 

군산지역 방폐장이 거론된 것은 2003년 6월초. 강근호 당시 군산시장이 방폐장 유치를 희망하면서 시작된 첫 논의는 한달여만에 ‘부지적합성’이 문제가 되면서 끝이 났다. 1년여가 지난 지난해 9월, 다시 어청도가 물망에 올랐다. 그러나 이 역시 진전되지 못한채 수면아래로 가라앉았다.

 

‘비응도’가 부상한 것은 지난 연초. 행정을 중심으로 물밑작업이 진행되면서 ‘비응도’가 새로운 부지로 떠올랐다. 공무원이 중심이 된 ‘원자력을 알고 사랑하는 모임’이 결성되고 민간차원의 단체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원전 견학과 함께 방폐장의 안전성을 알리는 이른바 ‘풀뿌리 홍보’가 시작된 것도 이 즈음이다.

 

본격적인 유치 추진이 궤도에 오른 것은 7월18일 군산시의회의 방폐장 유치동의안 통과가 기점이 됐다. 18대8로 통과 이후 열린우리당 소속 유보입장의 시의원들이 ‘유치 찬성’ 당론에 따라 찬성활동이 무게를 갖게 됐다.

 

군산시는 8월 29일 산업자원부에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시설 유치신청서를 제출, 경북 경주 포항 영덕과 함께 유치경쟁에 들어갔다.

 

유치신청을 기점으로 찬성과 반대 양측의 두달여동안의 찬성과 반대 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유치를 희망하는 각 사회단체의 성명과 결의가 하루에도 2∼3건씩 발표되는가하면 반대측 역시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농민회, 시민사회단체 등이 결속됐다.

 

9월 14일 전북도와 군산시는 방폐장 유치시 정부의 특별지원금과는 별도로 300억원 지원과 해당 지역의 농산물 전량수매 등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9월 중순을 넘어서면서 찬성과 반대 양측의 고소와 고발 등이 잇따르면서 과열양상이 시작됐다. 10월4일에는 주민투표법에 따라 주민투표 일정 등이 공고되고 공식적인 투표활동이 시작됐다. 10월8일까지 부재자신고를 마감한 결과, 군산지역은 전체 유권자의 39.3%가 부재자 신청을 했다. 부재자신고요건이 완화되고, 찬성측의 적극적인 독려로 이루어진 기록적인 수치였다. 높은 부재자 신고율은 반대측을 자극, ‘관권개입’ 논란이 제기되면서 반대측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10월 6일에는 반대측이 일본 방폐장 로카쇼무라 지역 시의원을 초청해 ‘방폐장의 문제점’ 등을 지적하는 기자회견을 가졌으나 이튿날 한수원이 이에 대한 반박자료를 내면서 다시 논란이 일었다.

 

정부의 ‘불공정한 편들기說’이 제기된 것은 10월초. 공식적인 문제제기는 송웅재 군산시장 권한대행이 가진 10일 기자회견이었다. 송대행은 경주 원전 증설 승인과 이에 따른 특별지원금 지원 결정 등은 정부의 편들기라며 강도높게 비난했다.

 

정부 편들기 여론은 급속하게 확산되면서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플래카드 게첨으로 확대됐다. 문구는 더욱 자극적으로 변해갔고, 노골적이고 감정적인 내용들이 추가됐다.

 

또다른 쟁점은 투표공보의 반대측 사진으로 불거졌다. 찬성측의 이의제기로 선관위가 10월18일 ‘기형태아 사진-허위’라는 결정을 내린 것. 그러나 선관위는 ‘허위사실이지만 공보에서 삭제하긴 어렵다’는 상식밖의 결정으로 찬반 양측 모두에게 비난을 받았다.

 

지난달 24일, 민감한 시기에 ‘직도사격장 군산 설치’가 일부 언론을 통해 전해지면서 ‘정부 편들기’여론은 한층 심화됐다. 국방부가 즉각 해명했지만 여파는 찬성측에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

 

부재자 투표가 시작된 25일부터는 공무원 개입에 대한 반대측의 감시활동이 강화됐다. 투표를 이틀 앞둔 31일에는 대규모 집회와 강현욱지사의 눈물 호소도 있었다.

 

2일 투표가 끝났다. 개표결과 군산은 결국 압도적인 찬성율에도 불구하고 경주 찬성율을 넘지 못한 채 유치에 실패했다.

 

2003년 6월에 시작된 군산의 방폐장 역사는 이렇게 막을 내리고 있다.

 

이성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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