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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사람] 고향이야기로 풀어낸 '현실의 아픔'

「변산바다 쭈꾸미 통신」펴낸 시인 박형진

큰 양푼에 고춧가루, 쪽파 굵직하게 썬 것, 마늘, 설탕, 소금, 초를 넣고 양념을 버무리고 여기에 뒤적거린 ‘주꾸미’는 왠지 ‘쭈꾸미’라고 해야 입 안에 침이 고인다. 국물은 ‘멀국’이라고 해야 그 칼칼하고 얼큰한 맛이 느껴지고, 달래 냉이는 ‘달롱개 나숭개’라고 해야 싱그러운 풀 냄새가 풍긴다.

 

변산반도 바닷가 생긴대로 꾸불텅꾸불텅 난 길을 짚어 모항에 닿으면, 띠목마을에서 태어나 자라고 여지껏 살고 있는 시인 박형진씨(47)가 있다. 농사를 짓고 어린이집 버스를 운전하며 글을 짓는 그가 변산바다에서 꼴까닥 침 넘어가는 고향이야기를 배달했다. 「변산바다 쭈꾸미 통신」(소나무). 산문집 「호박국에 밥 말아 먹고 바다에 나가 별을 헤던」을 10년 만에 고쳐 다듬고 새 글을 보태어 펴낸 것이다.

 

“고리타분한 유년의 기억을 지금도 버릇처럼 되작거려 보는 것은 그것이 결코 변할 수 없는 한 세대 전의 가치로써 아직도 나의 삶에 유효한 까닭이며, 엄청나게 변해버린 참담한 현실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변화와 소통을 두려워하는 자폐증의 그것일 터이다.”

 

젊은날 한동안은 서울서 고물장수를 해가며 시국 강연장에 부지런히 드나들었지만, ‘농사꾼은 농촌에 있어야 한다’는 깨달음으로 돌아와 땅에 뿌리를 박았다.

 

밀물처럼, 썰물처럼, 그의 고향은 자꾸만 바뀌어 가지만 “태어나 자란 이 곳과 질긴 게 있다”고 하는 ‘인간 박형진’은 의연하다. 봉고차로 아이들을 실어나르고 농사를 짓느라 핸드폰도 없이 하루 종일 집을 비워도 아쉬울 것이 없는 것을 보면 말이다.

 

푸짐이, 꽃님이, 아루, 보리. 자식 넷 이름처럼 그의 글은 맛나다. ‘찰지기로는 인절미 같고, 허물없기로는 쑥개떡 같고, 맛나기로는 짭쪼롬한 보리새우 같은’ 그의 글맛은 어디서 왔을까.

 

두 권의 시집과 두 권의 산문집을 낸 시인의 최종학력은 초등졸. 가난한 살림 탓도 있겠지만 초등학교 4학년 때 모조리 읽어버린 「한국문학전집」 100권이 학교 공부 재미를 시들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가 배운 것은 동네 어른들 비밀스런 이야기 속에, 짠 내음이 실려오는 바닷바람 속에, 찬 겨울을 이겨내고 움을 틔우는 단단한 땅 속에 녹아있는 삶이었던 것이다.

 

‘쑥개떡 향 아른아른한 봄’ ‘너벅너벅한 상추쌈 볼태기 터지는 여름’ ‘고구마 두둑 쩍쩍 금이 가던 가을’ ‘가마솥 콩물 줄줄이 흘러 넘치던 겨울’. 「변산바다 쭈꾸미 통신」은 내 키 보다 더 큰 농어를 질질 끌고 오시던 아버지와 빨간 크레용을 입술에 찍어 바르던 이웃집 누님이 살아있는 고향의 이야기다.

 

아직도 가난한 고향 삶 속에서는 그는 경쟁이 없고 돈이 필요 없는 유토피아를 오매불망 꿈꾼다.

 

라면을 먹다 양파를 건져서 상 위에 함부러 던지는 것은, 아무리 딸이라도 ‘싸가지 없는 짓’이다. 순간적으로 열이 뻗쳐 아이에게 손을 댄 아빠. “농사꾼이, 자기가 애써 가꾼 농산물을 팔지 못하고 쌓아놓거나 나눠 먹을 수 밖에 없는 이 현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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