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선 조화로운 목욕탕서 페르시아의 정취 흠뻑...사막의 한 가운데 초록 잔디밭 만나다
케르만시는 해발고도 1,900m의 내륙고원 산간 분지에 있어, 연강수량 140mm 내외의 건조기후를 보이며, 음료수도 세계에서 가장 깊다는 카나트와 우물에 의존한다.
시는 240년 사산왕조 페르시아의 아르다시르왕(王)이 발루치스탄 방면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서 건설한 군사기지에서 비롯되나, 도시로서의 발전은 10세기 이후부터였다.
11세기 이후의 사원이 남아 있지만, 시가지의 대부분은 1794년의 지진으로 파괴되
었다.
# 버스를 기다리며
이른 아침에 일어나 서둘러 버스 터미날에 나갔더니 예매한 버스 시간까지 1시간 이상이 남았다.
버스표를 교환하여 더 빨리 출발하는 차를 타려해도 그 일이 만만치 않다. 터미날 안에 있으면 답답하고 바깥 벤치에 앉으면 아침 햇살이 따갑고…. 그늘을 찾아 이쪽 저쪽 옮겨 다니다 적당한 자리를 발견하고 둥지를 틀었다.
잊기전에 몇가지 메모를 해두려고 수첩을 찾으니 없다. 에그머니~~ 드디어 우려하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콩당 거린다. 열흘간이라도 잘 다닌 것에 감사는 하지만 수첩은 정말 중요하다. 이번 여행에선 여러가지 기록을 착실히 잘 해왔는데….
내 머리는 숫자에 너무 약해서 적어두지 않으면 시간과 금액은 백지에 가깝다. 그간 만난 사람들의 주소도, 앞으로 찾아가야 할 곳도 다 그곳에 적혀 있다. 차라리 물건이나 돈을 분실했다면 잠시 애석한 마음뿐일 텐데….
배낭을 걸머지고 지난 행적을 추적했다.
앗! 벤치 바닥에 수첩이 떨어져있다. 소리를 지르고 싶을 만큼 반갑다. 수첩을 주워 들고 나도 모르게 입마춤을 했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실성한 놈인 줄 알았을 것이다.^^
# 케르만 도착
케르만행 버스. 이번에는 일반 벤츠버스다.
15,000리알, 오후 2:00에 케르만에 도착했으니 5시간 반 걸렸다.
화이트와 레드의 조합은 언제 봐도 산뜻하고 생동감을 준다. 차도르를 쓴 학생들을 보면 늘 수녀님이 연상된다. 왠지 정숙하고 은밀할 것 같은 매력이 있다.
케르만 버스 터미날에 도착하여 꾀를 내었다. 자헤단행 버스를 예매하고 수화물 보관소에 가서 표를 보여주고 배낭을 맡겨두었다. 저녁에 와서 찾은 다음 야간 버스를 타면 된다. 물론 보관료는 없었다.
누군가 배낭을 뒤져서 무언가를 꺼내 가는 일만 없다면 배낭이 통째로 사라지는 불상사는 없을 것이다. 착한 이란 사람들을 믿기로 했다.
# 케르만 바자르의 목욕탕 ‘겐잘리한’
캐밥 한 그릇 뚝딱하고, 케르만 바자르로 향했다.
바자르 앞 광장에 있는 기념탑이다. 이 조형물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그건 모른다.^^
바자르 안에 있는 모스크. 으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모스크가 있다는 걸 안다.
종교가 생활인 사람들에게 이 공간만큼 중요한 곳은 없을 테니까.
야즈드에서 본 버드기르가 케르만에도 있다.
야즈드에서 케르만 까지는 끝없는 사막이 이어진다. 그렇다고 우리가 상상하던 그런 사막은 아니다.
테헤란에서 헤미드씨가 케르만에 가면 꼭 봐야 할 곳이 ‘겐잘리한’ 이라는 목욕탕이라고 했다.
“왠 목욕탕을 다 구경한담?” 그래도 꼭 봐야 한다고 해서 기억해 두었다.
정확히 발음하면 “겐즈 알리 칸” “Hmum-e Ganj Ali Khan” 바자르 안에 있어서 찾기 쉽다.
입장료 30,000리알. 작지만 이란의 생활상을 이해하는 데는 아주 좋은 곳이다. 천정을 통해 들어오는 빛의 흐름과 곡면과 선의 조화. 창, 기둥, 타일, 욕조…. 페르시안의 취향에 그저 감동할 뿐이다.
헤미드씨가 침이 마르게 자랑할 만도 하다.
# 마한 샤흐쟈데 가든 가는 길
목욕탕 박물관을 나오는데 멋진 건물 포스터가 걸려있다.
“저기가 어디죠?” “마한 샤흐쟈데 가든”
“얼마나 먼곳에 있습니까?” “이곳에서 40Km쯤 남쪽 ‘밤’(Bam)으로 가는 길옆에….”
자헤단행 밤차를 탈 여유가 충분했다. “좋았어. 저길 가자.”
박물관 직원이 친절하게 몇 곳 더 둘러보며 3 시간 차를 쓰는 조건으로 택시를 흥정해 주었다.
“80,000리알 (11,000원)” 헉…. 싸다. 내가 흥정을 했다면 100,000리알도 더 불렀을 것이다.
이번에는 사막 기분이 물씬 나는 고은 모래밭을 지나갔다. 이걸 버스를 타고 지나쳤더라면 얼마나 후회를 했을까?
전혀 생각지 못했던 곳에 왔다.
지금까지 보았던 모스크와 분위기가 다르다.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곳에 기사가 데려다 주었다.
아이구~ 너무 황송하다. 이렇게 멋진 곳이 황량한 벌판 속에 있었단 말인가?
# 사원‘아람가헤 샤 네 마톨라 바리’
마한 시내를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사원이다. ‘아람가헤 샤 네 마톨라 바리’(Aramgah-e Shah Ne’matolla vali)
아람가헤는 무덤이라는 뜻이다. 쉬라즈의 하페즈 무덤을 “아람가헤 하페즈”라고 불러서 처음으로 기억한 이란어가 무덤이다. ‘Bagh’는 가든, ‘Bazar’는 시장, ‘Mosque’는 사원. 이란어 몇개는 확실하게 기억한다.^^
그러니까 이 사원은 Shah Ne’matolla vali의 유해를 모신 사원이다.
이란에서는 늘 천장을 보며 감동을 받는다.
‘아람가헤 샤 네 마톨라 바리’는 다른 어떤 사원보다 조용하고 엄숙하다.
내부도 무척 정갈하여 택시비도, 20,000리알이라는 입장료도 아깝지 않았다.
혹시 케르만을 가는 분들이 있다면 마한을 꼭 가보라고 추천해 드리고 싶다.
# 사막 속의 오아시스‘샤흐쟈데 가든’
다시 차를 달려 마한 시내에서 4~5Km 떨어진 ‘Bagh-e Shahzade’ 로 왔다. 우리말로 하면 ‘샤흐쟈데 공원’. 사막 속의 오아시스라고 불러야 할까?
물 빛깔이 황토색을 띠고 있다는 점이 조금 안타깝지만 이런 곳에 물이 펑펑 쏟아진다는 자체만으로 놀랍다.
Qajar 왕조의 마지막 공주 ‘미르자’의 저택이라고 하는 하얀 집이 포스터에서 본 그 곳이다.
낮은 언덕위에 만들어진 정원은 꽤 많은 양의 물이 계단식 단을 타고 흘러내린다.
계단 주변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그림처럼 아름답다.
하얀 저택 뒤로 해가 지고 있어 사진 찍기가 만만치 않다.
주변 숲과 백색의 명암이 너무 뚜렷하기 때문에 노출을 어느 곳에 맞추어야 좋을지 모르겠다.
어떻게 찍어야 그 포스터 사진처럼 나올까?
아침에 왔다면 정말 멋지게 찍힐텐데…. 서툰 목수가 쟁기 탓만 한다.
미르자 저택 옆의 숲. 사막 속에서 보는 파란 잔디는 또 한번 감동이다. 저 숲과 잔디를 유럽에서 보았다면 그냥 스쳐 지나갔을 터이지만 이곳은 이란이다. 대비가 극명할수록 감동은 커진다.
마한 샤흐쟈데 가든을 나서면서 해지는 산을 바라보았다. 쉴 틈 없이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써오지만 늘 표현의 한계에 부딪힌다.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이야기를 어떤 방법으로 옮겨 올 수 있을까? 혼자라는 것이 가슴 저민다.
/김흥수(배낭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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