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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의 길목에서] 시인 김용옥씨

나를 비우며 인생을 쓰지요

이쪽과 저쪽의 공기를 소통시키는 아주 작은 여유의 공간. 또는 아주 작지만 이것과 저것을 완전히 분리시키는 간격. 그는 “내가 쓴 수필은 생활의 틈”이라고 말한다.

 

2003년 수필집 두 권을 한꺼번에 냈다. 오래 기다리고 오래 믿은 시간 만큼, 이제는 다시 움직여야 할 때. 김용옥 시인(57)은 지금, 세번째 시집과 세번째 수필집을 준비하고 있다.

 

“시와 수필,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은 없어요. 다만 말이 많아지면 죽는 것들은 ‘이건 시로 써야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지요. 요새 시는 비꼬기지 새롭게 보기가 아니어서 아쉽습니다.”

 

그는 시에 대한 경외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점 하나 토씨 하나에도 고심하며 함부로 하지 못한다. 평이한 언어지만 이성적이고 냉철한 눈으로 삶의 의미를 성찰하는 그는 “시는 모든 문학, 모든 예술의 창”이라고 말한다. 간혹 그의 수필이 시처럼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피아노로 똑같은 악보를 연주할 때 소리만 듣고서도 연주자를 골라낼 수가 있죠.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손이 내 머리와 마음과 일치가 되어야지, 기계를 거치면 그것은 예술이 아닙니다.”

 

류머티즘으로 손가락이 곱아도 글을 쓸 때면 그는 꼭 연필을 잡는다. 머리 속의 것들이 마음을 타고 줄줄이 나오면 그 후 도려내는 작업을 한다. 버리는 것은 아깝지 않다. “자기가 본 인생을 쓰는 것이 창작”이라고 생각하는 그에게 남들과 똑같은 것은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하루 놀러가서 좋은 풍경 보고 호들갑 떨면서 쓰는 게 시가 아닙니다. 열번 스무번 가보고 수십번 생각했을 때 대상을 진실되게 볼 수 있지요.”

 

난을 20년 키우고 난 다음에야 쓴 시 ‘난’, 장국영을 20년 좋아하고서야 쓴 ‘장국영 별곡’, 날이 궂은 날이면 찾아갔던 중앙시장의 삶을 그린 ‘도시인의 사랑’처럼 그는 ‘이제는 써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 비로소 문학으로 인생을 쓴다.

 

“문학은 학문입니다. 배워 알지 못하면 남과 다른 글을 쓸 수 없어요.”

 

시집 한 권이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어투, 똑같은 소재라면 재미가 없을 것이다. ‘그림같이 쓸 수 없을까’ ‘음악같이 들을 수 없을까’ 그는 늘 문학의 기법을 고민한다.

 

“보통 사람들이 시는 어렵고 똑똑한 사람이 쓰는 건 줄 알았는데 내가 읽어도 내 마음 같다고 할 때면 기분이 좋아요. 사상이 어렵다고 해서 말을 어렵게 할 필요는 없거든요.”

 

올해 11집을 발행하게 되는 동인지 ‘끈’도 마찬가지다. 1991년 자기를 표현하지 못했던 여성들을 대상으로 글쓰기를 가르쳐 지금껏 끌고 왔다. “누가 이들의 가슴의 문을 열겠는가”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자신이 가르치는 여성들이 새롭게 눈을 떠 자식들만 잘 가르쳐도 어디냐”는 작은 마음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그는 “글은 본디 날 비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잘 버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몇 년 동안 쌓인 수백편의 시와 수필. 우선 130편 정도를 묶은 시집 「사랑밭에서 사랑꽃 핀다」를 먼저 비워낼 생각이다. 아직 정리하지 못한 수필집도 내년에는 꼭 떠나보낼 계획.

 

글을 비워내며 그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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