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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포-해외여행] 웃비아의 샛길로 빠지는 배낭여행 - 실크로드를 가다 (19)

말라버린 한나 호수에...넉넉한 사람의 情

위부터 한나호수, 파키스탄 버스, 합승택시 스즈키. ([email protected])

퀘타 Quetta : 파기스탄 서부 발루치스탄주의 주도. 인구 56만 307(1998). 퀘타란 파슈토어로 성채라는 뜻입니다. 해발고도 1600m의 건조한 고원에 있고, 북쪽의 아프가니스탄, 서쪽의 이란으로부터 인더스강 골짜기에 이르는 교통로 교차지역에 있어 군사·교역상 요충지입니다. 주변에 포도·석류 등의 과수원이 많고 식품·화학·섬유 등 공업도 발달하였습니다. 하지만 퀘타에는 여행자들이 특별히 볼만한 관광지는 없습니다. 육로로 이란을 가기 위해서는 여행자들이 어쩔 수 없이 들러야 하는 도시입니다.

 

끝없는 모래 바람 속을 달려 새벽 6시경 해발 2,000m 가까운 산을 넘자 동이 텄습니다. 아침 7시, 드디어 기나긴 여정 하나가 끝났습니다. 퀘타다.

 

이슬라마바드행 비행기 표 구하기

 

버스가 도착한 곳은 터미널이 아닌 그냥 길거리... 왜 이런 곳에 차를 세우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릭샤 삼총사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3년 전 인도에서 혼돈의 느낌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눈을 돌리자 충격의 현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양을 도살하여 껍질을 벗기고 하얀 속살을 대롱대롱 메달아 둔 정육점. 곁에는 목이 그대로 뒹굴뒹굴. 빨간 피가 너무 선명하여 페인트를 한통 부어 놓은 느낌입니다. 새벽차에서 내릴 때 이런 장면부터 목격한다면 어떤 느낌이 들지 짐작해 보십시오. 이 도시를 가능하면 빨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항공편부터 알아보자.” 퀘타에서 라왈핀디까지 열차가 운행되지만 표구하기 쉽지 않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고 했습니다. (퀘타-라왈핀디 1458Km 34시간 소요) 가능하면 파키스탄은 북쪽 지역에서 느긋하게 보낼 예정인데 과연 그게 가능할지?

 

스즈키 운전사가 다가왔습니다. “어디를 가려고 하느냐?” “이슬라마바드행 비행기를 타고 싶다.” “그럼 PIA에 가서 항공권을 사서 공항에 가면 된다. 비행기는 하루에 한번 12시경에 있다" "얼마에 갈래?" "공항은 멀고 항공사도 들려야 하니 300루피 (6,000원)" "헥... 왜 그렇게 비싸?" "이거 스즈키잖아. 여러 명이 타면 싼데 너 혼자 가려면 요금 다 줘야 되." "200루피에 가면 탈게" (항공사가 어디에 붙었는지 공항이 얼마나 먼지 모르는 상황이라 더 이상 깎을 수 없었습니다.)

 

아침 일찍 PIA(파키스탄 항공)에 도착하자 아직 문을 안 열었습니다. 스즈키 기사를 마냥 기다리게 할 수 없어 여기 까지 온 요금만 계산하고 보내려니 약속한 200루피를 달랍니다. "이 놈아 배를 째라. 1KM도 안 떨어진 거리를 타고 왔는데 200루피를 줘?" "너 같으면 200주겠냐? 그럼 여기 문 열 때지 기다려. 표 끊으면 공항까지 가서 약속한 돈줄께. 네가 그렇게 하자고 했잖아" 그래도 나 때문에 아침 장사를 망쳤으니 200 다 줘야 한다고 우깁니다. "항공사가 언제 문을 여는지 네가 나보다 더 잘 알면서 왜 표 끊어서 공항까지 안내한다고 했어. 일이 이렇게 된 건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표도 안 끊고 공항에 갈래? 이 거리라면 10루피 쯤 될 텐데 아깝지만 100 줄께 제발 돌아가라 그리고 잘 먹고 잘 살아라..." 아침부터 항공사 정문 앞에서 옥신각신... 흰옷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젊은이가 등장하여 우리의 싸움은 끝이 났습니다. (항공사 직원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표 끊으러 온 젊은이였습니다.)

 

30분 이상 정문 앞에서 기다렸다 사무실을 들어가자 오늘 표는 이미 매진되었고 내일 출발하는 3시 비행기가 있다고 했습니다. "에구~ 그거라도 줘라". 퀘타에서 하루를 머물다 가라는 하늘의 뜻이라고 깨끗이 받아 들였습니다. 함께 기다린 젊은이도 이슬라마바드행 비행기 표를 끊었죠.

 

(안내 : 퀘타는 작지만 국제공항입니다. 일주일에 한번 라호르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퀘타를 경유하여 이란 마샤드 까지 운행되고 주변 나라로 떠나는 비행기도 이따금 있습니다. 이슬라마바드와 카라치는 매일 일회 운행. 단, 모래 폭풍의 영향으로 종종 결항이 됩니다.)

 

"어디서 묵을 거냐?" "아무데나 싸고 깨끗한 집이면..." "내가 묵는 호텔이 괜찮은데 거기 갈래?" "얼만데?" "내가 말해주면 400루피(8,000원)면 될 거야." " 그렇게 하자." 그 청년이 잡은 택시를 타고 마들린 호텔로 갔습니다.

 

몹시 어수선한 길거리를 지나 도착한 마들린 호텔은 겉보기보다 속이 깔끔했습니다. 뜨거운 물도 잘 나오고 TV도 있고, 시트도 깨끗하고...종업원들의 친절도 맘에 들었습니다. 함께 묵은 젊은이는 바로 옆방인데 아마도 신혼여행 중인 것 같았고요. 불편하거나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노크를 하라고 했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한나 호수와 새로운 외국인 친구

 

퀘타에는 특별한 관광명소가 없어 그냥 돌아다니며 사람 구경 차 구경하는 걸로 하루를 보내야 합니다. 굳이 일거리를 만들자면 서점에 가서 파키스탄 지도를 한 장 사는 것. 제일 번화한 진나 로드의 서점을 찾아갔습니다. 거리 풍경은 분명히 인도와 다른데 자꾸만 인도가 오버랩 됩니다.

 

5월 1일 달이 바뀌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2주가 지났네요. 여행이 좋은 점 하나를 꼽으라면 머리가 땅에 닿으면 잠이 든다는 것입니다. 집에서는 잠들기 어려워 별 짓을 다하다 포기하는 경우도 있는데... 잡념을 하지 않고 적당히 몸을 움직여 주는 것이 불면증에 특효약이라는 걸 여행을 통해 증명하는 샘입니다. 집에서 쓸데없는 걱정을 안 하고 사는 날이 과연 올까요? 그건 돌아가서 잠 안 올 때 생각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슬라마바드행 비행기는 4:30분에 출발. 시간이 남습니다. 외곽에 있는 한나 레이크를 가 보자. 지도를 들고 버스터미널로 나왔습니다. 호수까지 바로 가는 버스는 없고 그 근처에서 좀 걸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22루피를 주고 미니버스를 타고 도로 가에 내릴 때까지 30분 정도밖에 안 걸렸습니다.

 

(버스가 갈 때 사람들이 손을 들어도 기사가 세워주지 않은 이유를 이 차에서 내린 후에 알았습니다. 잽싸게 뛰어 지붕위로 올라가거나 메 달려 온 겁니다. 신기한 사람들...^^)

 

재미있는 파키스탄 인도의 시내 교통수단의 중심에 오토릭샤가 있다면 파키스탄은 스즈키가 있습니다. 스즈키는 말 그대로 일본 스즈키 회사의 소형차를 말하는데 스즈키가 아니어도 파키스탄에서는 작은 차는 무조건 스즈키로 통합니다. (우리가 4륜구동 차를 Jeep이라고 부르던 것처럼...) 또 하나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스즈키나 미니버스를 타고 가다보면 길거리에서 승객들이 손을 들어도 차는 서지 않고 그냥 지나쳐 버립니다. 처음에는 돈 벌기 싫어하는 버스 기사의 정신상태가 의심되더군요. 그런데 이유가 있었습니다. 손을 든 승객이 쥐도 새도 모르게 버스 지붕에 앉아 있는 요술들을 부리더군요. 참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주성치가 만든 “소림축구” 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종종 일어납니다.

 

파키스탄을 대표하는 이미지 하나를 떠올리라면 대형버스와 트럭의 요란무쌍(?)한 화려함입니다. 이 부분은 필리핀의 찌프니와 아울러 거의 예술의 단계까지 승화되었다고 보는 대요. 이렇게 장식을 하는 이유는 사고를 방지해 준다는 주술적 의미가 내포되어있기 때문이랍니다. 무시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신이 지켜주는 것은 증명할 수 없지만 화려함이 눈에 쉽게 뜨여서 사고 예방에 틀림없이 도움이 될 겁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새로 출고되는 차들은 장식을 점점 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파키스탄 여행의 재미 하나가 줄어드는 샘이지요.

 

호수가 호수가 아닙니다. 갈수기라 물이 흔적만 남고 다 말라버렸습니다. 그래도 소풍을 나오는 사람들이 띠엄띠엄 보이네요. 물이 가득 차면 이 사람들이 얼마나 뿌듯할까? 짐작만 했습니다.

 

이곳에서도 소풍 나온 사람들이 이방인을 반깁니다. 짜이를 두 잔이나 마시고 또 콜라 한 병을 얻어 마셨습니다. 안 마셔주면 섭섭해 할 분위기라 어쩔 수 없이 물배를 채웠죠. 물 마른 한나 호수에 염분 섞인 물을 조금 적선하고 돌아 왔습니다.^^

 

호텔에 돌아오자 어제 그 젊은이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직 시간이 좀 남는데... 할 일도 없고 공항에 가서 기다리는 편이 낫겠다. 릭샤를 잡아타고 함께 공항으로 왔습니다. "너 부인은 같이 안 가니?" "응... 사실 부인이 아니고... 애인이에요. 집에서 결혼을 반대해서 몰래 만나러 왔어요." "웁스, 로미오와 줄리엣이 파키스탄에도 있네!"

 

그 때 부터 정식 통성명을 시작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파키스탄에 와서 캐슈미르 지역을 못 볼 것 같아 아쉽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이 친구가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캐슈미르 근처가 자기 집인데 함께 갈 생각이 없냐고 했습니다. "왜 없겠어? 정보가 없어 못 갈 뿐이지..." "그럼 이틀간 우리 집에 가요" " 너 회사가 라호르에 있다면서..." "5월 3일이 파키스탄 국경일인데 연휴여서 집에 다녀 올 참이었습니다." 이렇게 또 한 명의 친구를 만났습니다.

 

/김흥수(배낭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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