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자·김응천씨 부부의 한옥사랑
지난해 가을, 전주 한옥마을 태조로에 예쁜 찻집이 문을 열었다. ‘고신(古新)’ 이라는 작고 운치있는 간판을 내건 이 찻집의 주인 이은자씨(55)는 전주 한옥마을의 열혈 팬(?)이다. 신혼시절 남편(김응천씨 전주예수병원 방사선종양학과)의 직장을 따라 익산에서 전주로 이사온 그는 한옥마을의 나즈막한 한옥과 정취에 반해 이곳에서 살림을 시작했다.
“아무래도 아파트와 비교해 불편함이 없지 않았지만 한옥의 장점이 그 정도의 불편함 쯤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게 했어요.”
당시 한옥마을은 활기가 없었다. 규제의 울타리속에서 개발과 보존의 첨예한 갈등이 깊어져있었던 한옥마을은 주민들에게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버려진 공간 쯤으로 인식되고 있었던 탓이다.
“그래도 아침이면 흙냄새 맡을 수 있고 오목대와 전주천변의 공기를 함께 마실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어요. 아이들도 순한 심성을 가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두차례 이사 끝에 지금은 찻집이 된 아담한 한옥을 샀다. 이 집에서 산것이 20여년. 2001년 한옥마을 태조로 공사가 시작되었다. 길가에 붙어 있던 그의 집 한쪽이 도로 면적에 수용됐다. 할 수 없이 헐려야 했다.
한옥마을을 떠났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3개월만 나가있자고 생각했어요. 그동안 다시 고쳐서 이사를 할 계획이었죠.” 12층 아파트로 이사간 첫날 마음을 잡을 수 없어 가족 모두 ‘사우나’에서 하룻밤을 났다. 고층아파트 환경을 더 견디지 못하는 것은 남편이었다. 대신 아이들은 신나했다. 따뜻하고 목욕물 콸콸나오는 아파트 생활이 아이들의 마음을 빼앗아 간 것이다. 아파트 생활이 ‘참 편리하고 좋다’고 생각한 것은 아이들 뿐이 아니었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이씨도 아파트 문화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편리함이 그렇게 빨리 사람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을지는 몰랐어요.” 3개월 아파트살이는 3년으로 늘었다. 두 딸이 시집가고 아들이 군대에 간뒤 부부는 자신들의 노후를 생각하게 됐다. 태조로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옛집의 쓸모도 고민거리였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며 사는 것도 즐겁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이 들수록 만나는 사람들이 한정되잖아요. 그래서 찾은 것이 찻집이죠.”
전업주부로만 살았던 이씨는 그렇게 찻집 사장이 됐다. 부부는 늘 마음에 두었던 한옥마을 재입성까지 실현했다. 올해 4월 찻집의 뒷편 한옥으로 아예 이사를 하면서 출퇴근 해야 하는 불편도 없어졌을 뿐 아니라 한옥의 정겨움을 즐길 수 있는 일상을 다시 얻었다.
“재래식 화장실이나 늘 보수하면서 살아야 하는 낡은 한옥의 단점이 있긴 하지만 열려 있는 공간이 주는 신선함과 자유로움은 더 큰 행복을 주죠. 이른 아침, 또는 해저물녘 한옥마을을 한바퀴 돌다보면 산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돼요. 조금은 느리게 사는 여유가 생기고, 그렇다보니 뒤를 돌아보는 성찰의 기회도 갖게 되지요. 한옥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찻집이 문을 연지 1년 3개월째. 부부는 자신들의 선택이 정말 잘된 것이었음을 새록 새록 느끼고 있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살았으면 좋겠어요. 한옥마을의 정취를 지키고 살리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공동체 문화를 가꾸는 것이 소망입니다.”
늘 행복한 부부는 지금 아름다운 한옥마을을 더 아름답고 살기좋은 동네로 만드는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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