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입는 의사 노송전주병원 유창훈이사장
노송 전주병원 유창훈 이사장(44)에게 정읍 칠보는 마음의 고향이다. 95년 칠보면 소재지에 칠보의원을 열어 10년간 의료활동을 해온 그에게 칠보는 우연하게, 그리고 아무런 부담없이 다가섰지만, 쉽사리 뒤돌아서지 못했다.
칠보의원을 맡아줄 친구를 구하고서야 8일부터 종합병원 이사장으로 본격 업무를 시작한 유 이사장은 칠보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면서 그간 자신이 ‘칠보의 정'에 흠뻑 취해 있었음을 알았다. 병원 이사장을 맡은지 3개월이 지났고, 병원 정상화까지 숨가쁜 시간의 연속이었지만 칠보의원을 맡아줄 의사를 구하지 못해 매일 오전 칠보에서 진료를 계속해온 그다.
유 이사장의 칠보에서 의사 생활은 ‘기인’에 가깝다. 그는 흰 가운 대신 생활한복을 입었다. 양의가 한 명 뿐이어서 의사 자체로 유명 인사지만, ‘한복 의사’로 더 유명하다. 한의사라면 몰라도, 한복 입은 의사는 아무래도 낯설다. 그것도 딱 2벌의 한복을 갈아입으며 10년의 의사생활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신문에 날’일이다.
“옷이 뭐 그리 대수겠습니까. 한복을 고집한 게 아니라 편안한 옷을 입다보니 한복 의사가 됐습니다.”
처음 병원 문을 열었을 때는 유 이사장도 양복과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차고 깔끔을 떨었다고 했다. 농촌지역에다 환자 대부분이 할머니·할아버지인 관계로, 양복이 거리감을 주었다. 맨발에 고무신을 신고, 흙이 묻은 옷을 입고 오는 농촌 환자들에게 아무래도 양복이 어울리지 않다고 그는 판단했다.
“장례식장도 가고, 결혼식장도 가고, 술집도 갈 수 있는 가장 편한 옷이 한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 이사장은 옷으로만 농촌 사람들을 닮으려 하지 않았다. 칠보에 완전히 정착하기 위해 텃밭이 딸린 집을 마련하고, 틈나는 대로 ‘상춘곡’을 지은 자리로 알려진 시산(詩山)에 오르며 칠보와 사랑을 나눴다.
대학병원에서도 사형선고를 받은 말기 암환자의 마지막 길을 보낼 때, 구강 대 구강의 인공호흡으로 의사로서의 한계와 무기력함을 온몸으로 안타까워한 일화도 칠보에 남겨두었다.
유 이사장은 5.18이 일어났던 고교(전북사대부고) 3학년때 독재타도의 유인물을 돌리다 제적당하고, 군부 독재가 계속되던 의대 재학중(전북대)에 또 제적 당하는 순탄치 않은 학창시절을 보냈다. 2003년도 5.18유공자가 됐지만, 학창시절의 상처들이 사회와 일정 거리를 두고 자기만의 세계로 자꾸 들어가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한가하고 여유로웠던 농촌 의료를 접고 병원 경영인으로 새 출발선에 선 유 이사장은 옷부터 양복으로 갈아입었다. ‘강호’의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병원 얼굴인 이사장의 이미지가 중요하다며 병원 부속실에서 반강제로 갈아입혔단다.
“앞으로 1년 정도는 한복입은 의사를 못보실 겁니다. 옷이 바뀐다고 칠보의원때의 마음이 바뀔 수는 없지만요.”
무너진 ‘강호의 질서’를 바로잡겠다는 알듯모를듯한 선문답을 이어나가는 유 이사장은 강호의 세계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뼈를 묻을 곳이 아니며, 자신은 노자의 안분지족을 찾을 것이라고 했다. 강호에 몸담는 동안엔 결코 패배자가 되지 않을 것이란다.
그는 이기는 길이 정도에 있으며, 어려울 수록 돌아가지 않고 정공법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느린 것 같아도 정도가 빠른 길이며, 다른 사람을 움직이는 길이라고도 덧붙였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