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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포-레저] 가볼만한 곳 - 김제 '아리랑 테마여행'

일제수탈 민초들의 애절한 삶이여...

위부터 심포항에서 겨울 바다낚시를 즐기는 강태공, 김제 아리랑 문학관, 아리랑 문학비앞에서 김성희씨와 함께 기념촬영. ([email protected])

들녘은 항상 풍성함과 충만함을 연상케 하지만 ‘겨울 들녘’은 왠지 휑한 느낌을 준다.

 

최근에 찾아본 김제만경 평야가 바로 그랬다.

 

근대사의 중심에서 활약한 김제인들의 민족혼과 뿌리를 찾아 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어 들녘이 흰 눈으로 뒤덮인 소설 ‘아리랑’의 무대를 몇곳 찾아봤다.

 

잘 알려진대로 소설 아리랑은 작가 조정래가 쓴 12권의 대하소설로 민초의 땀, 눈물어린 역사의 들판인 김제를 배경으로 우리 선현들의 독립운동과 민족애, 그리고 민족적 자긍심을 일깨워준 것이다.

 

시대적 배경은 1904년부터 45년 광복때까지로 식민지 치하 김제평야부터 시작해 군산항구, 하와이, 만주, 연해주, 중국본토, 중앙아시아 등 광범위하기 그지없다.

 

그중에서도 아리랑 테마여행은 소설의 주 무대가 됐던 내촌과 외리마을, 하시모토 농장, 하시모토 송덕비, 원평천, 광활 간척지와 염전, 신작로 등 김제 일대에 집중된다.

 

5, 6년전에 읽었던 아리랑이 갑자기 생각나 떠난 아리랑 테마여행의 안내는 김제시청 기획계장 당시 ‘아리랑 프로젝트’의 실무자였던 김성희씨(47·현 노인복지타운 소장)가 맡아줬다.

 

아리랑 테마여행의 첫 출발점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규모가 큰 벽골제에서 시작됐다.

 

묵묵히 1700여년의 역사를 지켜봤던 벽골제를 찾아보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기쁨이다.

 

김제역이나 터미널에서 부량, 화호 방면으로 나가다 보면 15분 남짓이면 도착한다.

 

벽골제에 들어서면 무엇보다도 수리민속 유물전시관을 봐야 한다.

 

인류문명의 기원과 궤적을 같이하는 농경문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꼼꼼히 살피는게 좋다.

 

어린이나 청소년은 물론, 어른들도 우리의 농경문화, 수리의 역사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곳이다.

 

바로 옆에는 소 테마공원이 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소 테마공원의 육중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조각품도 볼 거리다.

 

벽골제를 찾았으면 벽천 미술관을 빼놓을 수 없다.

 

오원 장승업, 묵로 이용우의 화풍을 계승한 전북의 대표적 한국화가인 벽천 나상목의 작품이 이곳에 전시돼 있기 때문이다.

 

벽골제에 있는 ‘조정래 아리랑 문학비’에 새겨진 글귀가 눈에 띈다.

 

“김제들판은 한반도 땅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이루어내고 있는 곳이었다...조정래”

 

소설 첫 대목에 나오는 것으로 김제들판에 올때마다 정말 지평선이 있는지 관찰하곤 했는데 서해안 고속도로의 개통과 더불어 지평선을 볼 수 없어 안타깝기만 하다.

 

벽골제를 나와 간 곳은 바로 근처에 있는 아리랑 문학관.

 

제1호 김제명예시민인 조정래를 기념키 위한 문학관은 김제와 아리랑, 작가 조정래를 잇는 중요한 접점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어른키보다도 훨씬 높게 쌓여있는 소설 아리랑의 원고 2만장.

 

안내를 맡은 김성희씨는 현장 사진과 취재노트, 책걸상, 필기구 등을 자세히 소개하면서 원고 인수를 하면서 있었던 뒷얘기를 신나게 들려준다.

 

문학관을 둘러보면서 치열하게 인고의 세월을 겪었던 선현들을 생각하고 작가가 일제 강점기 식민지 민중들의 빼앗긴 삶에 대해 얼마나 심각히 고민했는지를 새삼 느낀다.

 

아리랑 문학관을 나서면서 느끼는 심정은 마치 서대문 형무소를 관람한 뒤 나설때와 비슷한 것은 왜 일까.

 

그리곤 바로 죽산쪽으로 향한다.

 

외리·내촌 마을은 일제시대 임씨, 박씨 등의 집성촌으로 100세대 가까이 됐으나 지금은 노인들만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곧 도착한 곳이 하시모토 농장이 있는 곳이다.

 

소설속의 실존 인물이자 실제 있었던 곳이란다.

 

일제시대 도내 일본인 대농장은 동양척식주식회사를 비롯, 하시모토(교본) 등 9개로 도내 농지의 80% 이상을 이들이 소유했다.

 

러일전쟁때 통역관을 했던 하시모토가 일제를 등에 업고 김제에 들어와 농민들을 수탈한 곳이다.

 

현재는 농업기반공사 동진지사 소유로 돼 있는데 하시모토 개인금고를 보니 열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한때 위세를 과시했던 하시모토 송덕비는 넘어진채 지난 세월만 그리는 듯 하다.

 

그리고 만경쪽으로 빠져 망해사와 심포항으로 향했다.

 

일제시대에 조성된 광활 간척지와 진봉을 지나면서 한때 수탈의 현장이었고 해방후에는 풍요로움의 상징이었으나 이제는 쌀값하락으로 인해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피폐한 들녘을 바라보는 심정은 답답하기만 하다.

 

생합으로 유명한 심포항에 이르니 몇몇 낚시꾼들이 망둥어 낚시에 시간가는줄 모른다.

 

만경강의 하류인 이곳은 칼바람이 부는 겨울 포구의 기분을 느끼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심포항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바닷가를 바라보며 맛보는 생합죽이나 생합요리는 별미로 추천할만하다.

 

아니면 만경읍에 있는 유명한 쇠고기집을 찾거나 만경 능제 주변의 붕어 매운탕도 별미다.

 

심포 바로 옆에는 망해사가 있다.

 

진봉산 고개넘어 깎아 지른듯한 벼랑위에 세워 망망대해를 내려다 볼 수 있도록 한 망해사는 조선 인조때 진묵대사가 낙서전을 건축, 증건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로써 간략한 아리랑 테마여행은 마무리 된 셈이다.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평소 무심코 지나쳤던 우리의 역사를 바로 아는데 이번 여행의 가치가 있는 듯 하다.

 

“김제를 배경으로 한 아리랑이 대하 드라마로 만들어져 텔레비전 등에 장기간 방영됐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김성희씨의 말을 들으면서 짧은 테마여행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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