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래씨 부부 2년전 영아원서 첫 만남 "이상하게 끌렸어요 내딸이다 싶었죠"
“오빠 오빠! 오빠 왔네.”
큰오빠 작은 오빠를 보고 좋아서 어쩔줄 모르는 하영이는 한참 신이 났다. 오빠들 뒤를 좆아 방으로 들어갔던 하영이는 다시 나오더니 낯선 손님들에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 방으로 다시 뛰어 들어갔다. 웃음이 절로 났다.
하영이는 진안에서 개인사업을 하는 이성래(45)·이봉심(37)씨 부부의 막내딸이다. 올해 네살. 그러나 이씨가 하영이를 얻은 것은 2년 전이다. 말하자면 하영이는 입양으로 이씨의 가족이 된 ‘업둥이’다.
“16개월되었을때 영아원에서 하영이를 처음 보았어요. 이상하게 마음이 끌리더군요. 내 딸이다 싶었죠.”
남편 이씨의 얼굴은 연신 웃음이다. 이씨는 공개 입양으로 하영이를 맞았다. 2003년 봄이었다.
결혼한 이후 줄곧 어려운 아이들을 후원해왔던 부부는 내심 ‘입양’을 계획하고 있던 터였다. 연년생인 용문(중3)· 진(중2)이도 아빠 엄마 못지 않게 반가워했다.
이씨 부부는 공개입양을 결정했다. 혈연의 전통이 강한 한국사회에서 ‘공개입양’은 여전히 정착되지 못한 문화지만 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입양’을 받아들이게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숨긴다고해서 영원히 비밀이 될 수 있다면야 또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알게될 자신의 출생에 대해 가능한 빨리 알게하는 것이 충격이 아닌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에 대한 감정이 특별했다. 아내 이씨는 그것을 ‘버려진 아이에 대한 애잔함과 사랑이 결합된, 산고로 낳은 아이와는 조금 다른’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그 감정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졌다. 낳아서 키운 아이들과 별 다르지 않은 ‘절절한 사랑’이 싹텄다.
아이는 낯선 가족들을 만난 몇개월동안 늘 불편해하고 불안해했다. 무엇인가를 안고 있지 않으면 늘 칭얼거렸고, 무작정 나가기 일쑤였다. ‘애정결핍’의 전형적인 증상이었다.
“처음 얼마동안은 정말 힘들었어요. 아이가 적응을 못하는데다 매일 울고 짜증을 내니 마음을 함께 했던 부부사이까지도 멀어지더라구요. 지금생각하면 그때가 고비였어요.”
그러나 2년이 되어가는 지금, 하영이의 ‘애정결핍증후군’은 말끔히 가셨다. 워낙 밝고 부침성이 있어서 엄마는 오히려 너무 활발한 것 아닌가 걱정할 정도다.
남편 이씨는 하영이가 온 뒤 삶의 기쁨과 재미가 달라졌다. 이를테면 ‘딸을 키우는 재미’다. 아들 키울때는 영 ‘남의 일’이었던 기저귀 갈아주는 일이나 우유 먹이는 일은 기본. 드러내놓고 자식 사랑 표현도 하지 못했지만 하영이에 대한 사랑 표현은 넘친다.
오래전부터 주말이면 영아원이나 시설들을 찾아 봉사해온 부부는 하영이를 딸로 맞은 후 한달에 2-3회는 하영이가 지냈던 영아원을 찾는다. 아이의 잠재의식속에 놓여있을 ‘어릴 적 기억’을 자연스럽게 이어주기 위해서다. 이씨 부부는 영아원을 찾는 일이 하영이에게도 좋은 과정이었음을 알게 됐다고 했다.
남편 이씨는 며칠전 동네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가서 하영이의 입학원서를 갖고 왔다. 집에서 기다려도 우편으로 받아볼 수 있지만 ‘유치원에 다니는 하영이의 모습’을 떠올리면 가슴 설레어 마냥 기다릴 수가 없어서였다.
“사실 우리가 하영이를 만난 것은 큰 행운이예요. 하영이는 가족을 갖게됐지만 우리는 하영이 덕분에 삶의 진정한 행복을 얻었지요. 그 크기로 보자면 하영이가 우리들에게 준 선물이 훨씬 커요.”
이씨 부부는 하영이가 불행한 이웃들을 사랑으로 껴안을 줄 아는 어른으로 자라기를 바란다. 여전히 편견이 심한 환경속에서도 ‘공개입양’을 선택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하영이의 해맑은 웃음을 보면 그 바람은 틀림없이 이루어질 것 같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