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집으로 가자.
쫓기다가 넘어지다가 이제는 가자.
비단실 그물이 나를 묶어서
조이는 핏줄엔 듯,
끌리어 가자.
부끄러움 부벼 삭일 언덕이 있는
평생을 속아 사는 어머니
어리숙한 기다림이 아랫목 같은
집으로 가자.
얼룩진 상처 이부자리 끌어 덮고
유순한 짐승처럼 이마를 맞대
눈물 콧물 문질러서 파묻어야지
날은 차츰 어두워지고
나도 다리 절며 돌아갈 데 있구나.
집으로 가자.
-시집 <오래된 슬픔하나> 에서 오래된>
성경에는 탕자가 아버지로부터 제몫의 재산을 빼내어 멀리 떠났다가 결국은 모두 탕진하고 죽지 못해 집으로 돌아 오자 아버지는 죽은 자식이 다시 돌아 왔다며 잔치를 베푸는 내용이 있다.
이 시에서도 ‘쫓기다가 넘어지다가 / 이제는 가자’로 시작하여 끝내 ‘나도 절며 돌아갈 데 있구나 / 집으로 가자’로 마무리 하고 있다. 물론 세상에서 실패하고 낙오된자에게 베푸는 휴먼메시지이나, 사악해진 현대인들에게 본래의 자기, 인간의 본향으로 되돌아 가자는 따뜻한 권유이기도 하다. 이가 곧 시의 다의성인바, 성서에 의지하면서도 일반 서정시와 다름없이 잘 쓰는 시인으로 김현승 다음이 이향아 시인이 아닌가 한다.
/허소라(‘북경대학 조선문화연구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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