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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사람] "시는 여백이다"

「오리막」펴낸 시인 유강희

또아리 끈을 질끈 물고 이제 막 물동이를 머리에 이는 사람, 등짝이 햇볕에 그을린 소에게 먼저 물을 떠먹이는 아저씨. 등물하는 사람, 빨래하는 사람이 있는 우물가에서 그는 시를 퍼올린다.

 

그러나 “나의 두레박질은 너무 서툴기만 하다”는 시인 유강희씨(38). 원광대 국문과 1학년, 만 열아홉이란 어린 나이에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됐던 그가 10년만에 두번째 시집 「오리막」(문학동네)을 펴냈다.

 

“대학 시절 신춘문예에 당선되면 등록금 전액을 면제해 줬어요. 일찍 데뷔하지 못했다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에 학교를 그만 뒀을지도 모르죠. 그랬다면 아마 시를 못 썼을 겁니다.”

 

이른 등단이 부담이 됐을 법도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서울을 떠나 밤골로 들어온지 햇수로 4년. 그곳에서 이번 시집을 얻었고, 우석대 한국어교육원에서 중국 유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게 된 지금도 김제시 금산면 용산리 밤골은 시를 쓰는 곳이다.

 

“밤골에서 때까우와 기러기, 닭을 기르면서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느꼈어요. 어쩌면 그것들이 날 키웠는지도 모르죠.”

 

그는 “주위의 작고 보잘 것 없는 모든 것들이 한솥밥을 먹는 한식구였다”며 “외롭다거나 쓸쓸하다거나 그리하여 북받친다거나 하는 말들도 사실은 한 솥의 밥이란 걸 새삼 깨닫는다”고 말했다.

 

‘오리막’이란 제목을 달고있는 네 편의 시는 옆집 할아버지가 키우는 오리나 동네 방죽 위에 떠있는 오리를 보며 자연스럽게 쓰게 된 것. 호박 고는 데만 넋을 놓고있는 할머니나 담배 타임을 달라고 하면 ‘으응, 타인’하고 주는 계룡댕이 수퍼, 그의 시는 수수하지만 초라하지 않다. ‘가난했으나 뜨거움이 뭔지를 알았고 속 떨리는 눈물이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지 어린 우리들도 알 수가 있었’던 시절로 고개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는 여백이고 여운이라고 생각해요. 의도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보며 끝맺음이 주는 울림이 큰 것 같아요.”

 

읽는 이로 하여금 생각에 잠기도록 하고 시를 끝내는 힘은 검은 색으로 나타나는 죽음의 현실과 그것을 통과해 새 생명을 얻으려는 움직임 보다도, 자연과 인간을 동일시하는 서정시 고유의 특징 보다도 매력적이다.

 

“나의 시도 언젠가는 그대들에게 한 솥의 뜨거운 밥이길 꿈꾼다”는 젊은 시인. 그러기 위해서 삶은 더욱 절박해져야 한다. 시인은 생의 절박함에 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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