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고 뒹굴고...격변기 살아왔다
"58 개띠 '멍'"
전주종합경기장을 몇 바퀴 돈 뒤 전주 팔복동 한 막걸리집에 모인 58년 개띠생 6명이 잔을 부딪히며 요란스럽게 '멍'을 외쳤다. 마지막 '멍'을 짧게 끊어 엑센트를 준다. 옆 테이블에 다른 손님들이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멍’은 58년 개띠의 영역 표시란다
“남의 눈치 안봐요. 격랑을 어떻게 헤쳐온 세대인 데, 주변의 시선이 무서워서 하고 싶은 말 못하겠습니까.”
주부 공무원 자영업 예술인 등 서로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면서도 나이가 같다는 이유로 뭉친 ‘58 개띠 마라톤 클럽’번개모임은 막걸리 잔이 돌면서 분위기가 무르익어가 갔다.
“전쟁후 베이붐 현상의 정점에 있었던 세대 아닙니까. 숫자가 많다보니 원튼 원치 않든 살아남기 위한 경쟁이 어느 세대보다 치열했습니다.”
남원에서 치과기공소를 운영하는 유재양씨는 58년 개띠를 ‘낀 세대’라고 규정했다. 숫자가 많다보니 대학이나 회사 입사 등에서 다른 어느 세대보다 힘든 경쟁을 뚫어야 했고, 격변기마다 맨 앞에 놓이면서 위에서 눌리고 밑에서 친 세대라는 것이다.
“우리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한문이 처음 없어졌고, 중학교 입학할 때 시험 제도가 없어졌습니다. 한글 1세대며, ‘뺑돌이’ 1세대인 셈입니다.”(익산시청 공무원 김명호씨)
“유신의 마지막 세대가 또 우리 아닙니까. 철저한 반공교육을 받으며 박정희 대통령을 신으로 생각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80년도 민주화 세대와는 간극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남원시청 공무원 양대석씨)
“초등학교 시절 월남전 참전 노래를 부르고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습니다.”(주부 좌정심씨)
시대적·제도적 전환기를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아왔다는 이들의 주고 받는 말에 동석자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또다른 주부 김정숙씨는 먹는 것에 대한 애환이 많았다고 어린시절을 기억했다. 좀 더 나이 든 세대처럼 직접적으로 춘궁기를 겪지는 않았지만, 호박잎과 보리개떡 등으로 배고픔을 달랬단다.
“사회생활에서 불운한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꼭 58년 개띠만이 아닌, 바로 위 아래 나이도 비슷하지만 한창 일할 나이에 IMF를 맞아 직장을 떠난 경우가 많습니다. 과장 초말년쯤에 직격탄을 맞은 것이죠. 어느 대기업의 경우 100명의 개띠중 단 1명만 남았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서울에서 인쇄회로기를 운영하고 있는 송의정씨는 IMF때 부하직원들이 구조조정되는 모습을 두고 볼 수 없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직접 사업에 뛰어들었다. 설 명절을 맞아 고향 동호회 회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그는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회사를 무작정 키우려는 생각보다 30여명의 직원들이 더이상 쓴맛을 보지 않도록 신경을 쓴단다.
58년 개띠들에게 가정 경제적으로도 운이 좋은 편이 못된다. “80년대 중반 대학 졸업후 직장을 다녔던 대부분은 집 장만이 쉽지 않았어요. 돈을 모아 집을 살 때쯤 되면 집값이 껑충 뛰곤 했습니다. 두세살 윗 선배들과 결혼한 동갑 여성들은 남자들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낫습니다.”
여성 개띠들이 놀림을 받지 않느냐는 물음에 김정숙씨가 발끈했다. “아버님이 건축업을 하셨는 데 제가 태어난 뒤 사업이 잘돼 ‘복동이’ 별명까지 얻었어요.다만 강아지처럼 돌아다니기를 좋아해 남편 뒷바라지가 소홀한 게 흠이지만요.”
그렇다고 58년 개띠들이 꼭 어려움과 고달픔만 달고 다닌 것은 아니다.“막걸리잔에 밤새 토론을 하는 낭만이 있었습니다. 마지막 순수와 낭만의 시대였다고 자부합니다.”
도립국악관현악단장으로 활동하는 유장영씨는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없었던 대학시절이었지만, 억눌리고 암울한 현실을 안주삼아 자유를 향해 몸부림쳤던 낭만이 그리워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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