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생 10명 고창 공음 신왕초 마지막 졸업식
고창 무장면 만화리 신왕초등학교를 찾아가는 길. 지난 겨울, 폭설 피해의 흔적은 농촌마을 곳곳에 남아있었다. 여러번 길을 물어 찾아간 신왕초등학교는 쓸쓸했다. 질퍽하게 젖은 넓은 운동장이 더 을씨년스러웠다. 온기 없어진 학교 건물안,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아주 낮게 들려왔다.
전교생이라고해야 10명. 지난해부터 입학생이 없어 2학년 유경이가 막내다. 경한이와 병남이 민경이 민이 현진이 미주까지 6학년 여섯명 아이들이 졸업하고나면 4명 아이들만 남는 이 학교는 올해 졸업식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다. 남은 아이들은 무장과 공음초등학교로 두명씩 사이좋게(?) 나누어 옮겨간다.
“농어촌의 현실속에서 폐교는 이미 여러해전부터 예상되어 왔지만 정작 폐교가 정해지고나서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는 고영태 교장(56)는 교장으로 승진해 처음 부임한 이 학교의 마지막 졸업식을 지켜볼 수 밖에 없게 된 것이 마음 편치 않다고 말했다.
개교 30년 역사 추억속으로 사라지다
신왕초등학교는 올해 도내에서 폐교되는 3개 초등학교 중 하나다. 10여년전부터 통폐합 대상으로 꼽혀왔지만 주민들의 ‘학교지키기’에 대한 열정으로 간신히 명맥을 이어왔다. 더이상 버틸 수 없겠다고 판단한 것은 지난해. 1학년 입학생 맥이 끊어진 현실에서 주민들의 욕심만 앞세울 수 없게 되면서부터다 고교장은 눈물 머금고 폐교를 받아들이는 의견서를 교육청에 제출하면서 학부모들은 못내 안타까워했다고 들려주었다.
안타깝기는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5학년생이 없어 4학년과 6학년을 맡고 있는 박성우교사(37)는 “학교를 지켜주지 못한 것 같아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다”고 말했다.
고교장과 박교사, 2학년과 3학년을 맡고 있는 신동현교사(28)는 폐교가 결정된 지난해 초부터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신왕 30년의 기록. 마지막 졸업식을 앞두고 발간된 ‘여시뫼봉의 얼이 담긴 신왕교육 30년’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100여쪽 화려하지 않은 소박한 책으로 묶여진 이 기록은 70년대 중반, 먼거리를 걸어다니지 않고도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돼 행복해하는 마을 주민들과 지금은 30-40대 중년이 된 어른들의 어린시절이 담긴 빛바랜 흑백사진부터 26회까지의 632명 졸업생 명단까지, 이 학교의 크고 작은 역사가 고스란히 담겼다.
“자료를 찾고 사진을 수집하느라 꽤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했다”는 교사들은 아이들이 성장해서도 어릴 적 꿈을 가꾸었던 초등학교의 역사를 기억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서로 사랑하고 위하며 지냈던 10명 신왕아이들
신왕 아이들은 그동안 2개 교실로 나뉘어 수업을 받았다. 학생수가 줄어든 이후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수업 환경이다. 득주는 4학년이지만 같은 학년이 없어 6학년 누나 형들과 함께 공부했다.
“친구가 없어 재미 없었겠다”고 말을 붙였더니 “형들과 노는 것이 더 좋았다”고 했다.
같은 교실에서 공부한 2·3학년 3명도 다르지 않다. 싸움 꽤나 했을법 한데도 서로 형제같이 지내는 학교 분위기 덕분에 아이들은 서로를 사랑하고 위할 줄 알았다.
전교생 투표로 회장이 된 전병남군(6학년)은 “어차피 중학교에 입학하면 학교를 떠나야 되지만 늘 이 자리에 있을 것 같은 학교가 없어진다니 섭섭하다”고 말했다.
“그런 것 있잖아요. 나중에 어른이 되면 자기 다녔던 학교에 장학금도 주고 또 찾아오기도 하고... 그런 것도 하고 싶었는데, 이제 못하게 되었잖아요.”
키는 작지만 야무진 병남이에게는 폐교의 의미가 특별했다.
눈물바다된 마지막 졸업식
16일 오전 10시. 신왕초등학교 2층 급식실을 꾸며 만든 졸업식장은 끝내 울음바다가 됐다. 개교 30년 역사를 접는 농촌 초등학교의 마지막 졸업식을 지켜보려 찾아온 마을 어른들과 학부모들, 각계 인사, 취재진까지 모두가 아쉬워하는 졸업식에서 고 교장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전했다.
“비록 신왕은 없어지지만 초등학교 시절에 아름다웠던 추억들을 간직하고, 늘 세상을 도와가면서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농촌의 아름다웠던 초등학교 하나가 이제 이름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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