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겨울의 묵은 때’를 벗어내기 위해 이른 아침 아내와 길을 나섰다.
늘상 오르내린 길이지만 겨울동안 곰도 아닌데‘동면(?)’한 탓인지 몸이 좀처럼 약삭빠르게 움직여 지지 않는다.
“빨리좀 와요”아내의 성화가 시작된다. 거의 매일 기린봉을 오르는 아내를 따라 잡을 순 없다.
“아∼좀 천천히 가자니까”
기린봉(271m)은 우리 가족에게는 뒷동산의 이미지가 되어 버렸지만 전주시민에게는 상서로움의 상징이자 포근한 안식처가 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전주시 남노송동과 교동, 남고동, 인후동에 걸쳐 있는 이 산은 아름답고 올망졸망한 나름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전주의 십경 가운데 제 1경이 기린토월인데 동쪽 기린봉 위로 솟아오르는 아름다운 달을 전주의 첫째가는 경관으로 꼽은 것도 이유가 있다.
찬바람이 아직 가시지 않았는데도 벌써 육각정과 선린사 부근 운동시설 근처에는 사람들이 모여 운동을 하고 있다.
늘 마라톤을 한다는 어느 할아버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가파른 산 등성이를 단숨에 내달린다. 꼬마아이들도 엄마와 함께 훌라후프를 돌리며 다가오는 봄을 만끽하고 있다.
아직 땅이 언듯하지만 순간순간 불어오는 바람은 봄이 코 앞에 있음을 짐작케 한다.
운동시설 있는 이 부근이 산행의 시작점을 알리는 곳이지만 처음 기린봉에 올랐을땐 이곳이 등산을 마친 곳이기도 하다. 등산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그보다는 체력탓이었다. 그런데 어느땐가부터 이곳 까지오면 절벽같은 가파른 언덕을 가로질러야 직성이 풀리곤 했다.
기린봉은 등산이라기 보다 휴일 뒷산에 오르는 기분이면 된다.
준비물은 물통과 넉넉한 여유 한 보따리만 있으면 된다. 거기에다 사랑하는 사람과 담소를 나누다보면 금방 정상에 다다른다.
기린봉 산행은 전주 아중리 문화로 길가에 깍아지른 절벽부근 마당재에서 시작한다. 그렇지만 난 선린사 부근에서 오르거나 마당재를 끝으로 산행을 마치기도 한다.
마당재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큰 대로변에 있어 대중교통편으로 오려면 전주 시청에서 버스를 내려 전주고를 지나 택시 기본료를 내면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선린사에서 오르는 등산객도 많다.
중바위산(치명자산)은 전주역 또는 전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신리, 남관 또는 관촌행 버스를 타고 좁은목에서 내려 승암교를 건너면 바로 중바위산 아래다.
기린봉 산행은 마당재에서 선린사∼기린봉∼순교자 묘지∼십자가길∼한벽당까지 2시간 30분 코스지만 난 늘 선린사에서 기린봉에 오른 뒤 물이 좋기로 소문난 약수터에서 목을 축인 뒤 아중저수지 부근으로 내려오곤 한다.
처음 기린봉에 올랐을땐 정말 ‘기린의 목’처럼 가파른 등산코스에 숨을 헐떡여야 했다. 1km도 안되는 코스지만 깍아지른 절벽같은 등성이와 가파른 계단을 지나 산자락 부근에서 잠시 숨을 돌리면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이내 한걸음에 달려 정상에 오르면 지친 몸과 마음이 한순간에 활력을 되찾는다.
정상에서 또다시 가파르게 중바위산(306m)쪽으로 내려와 100여m 평지를 걷다보면 시원한 물맛 소문이 익히 나있는 약수터와 중바위산이 갈라지는 두갈레 길이 나온다.
사실 몇년째 기린봉을 올랐지만 정식 등산코스로 걸어본적은 없는 것 같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내가 짜놓은 코스만을 고집하는 것은 뭘까?
기린봉 산행의 매력은 뭐니뭐니 해도 이름 모를 새들과 합창하는 즐거움이다. 남들이 잘 찾지 않는 코스인 약수터를 지나 저수지 부근까지 20여분 걷다보면 어디서 들리는지 귓가에 맑은 산새소리에 절로 노래가 나오고 이내 성악가가 된다.
일상에 지친 도시 샐러리맨에게 기린봉은 삶의 활력을 주는 소중한 보물이다.
등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나를 설득시킨것은 바로 기린봉이다. 짧은 등산의 맛을 보여주고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그리고 2%부족한 운동을 채워주는 것도 바로 기린봉이다.
선린사쪽으로 기린봉을 내려오면 아중체련공원이 눈에 들어온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이곳에는 인조잔디 축구장과 게이트볼장, 농구장, 배구장, 배드민턴장, 광장시설, 야외 체육공원 등 각종 체육시설과 편익시설이 들어서 있다.
또 체련공원 옆에는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국민체육센터(수영·헬스장)도 기다리고 있다.
아직 시민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동네 포근한 휴식공간임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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