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고전 무대는 관립극단으로서의 해야할 일"
기독교의 전통과 확고하게 연결돼 있는 앤토니오, 현명하지만 정작 자신의 남편은 운에 맡기는 포오셔, 아름다운 여인을 차지하기 위해 빚까지 지는 밧사니오.
세상은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을 욕하지만,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역시 모두 모순이다.
거역할 수 없는 시대상황 속에서 기독교와 유대교의 대립, 페미니즘의 반영 등으로만 해석됐던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 전주시립극단이 ‘베니스의 상인’을 새롭게 읽는다.
6일 오후 3시 극단 연습실에서 열린 시연회. 제67회 정기공연(11일 오후 7시, 12일 오후 3시·7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을 앞두고 지역 연극인들의 조언을 받아 마지막으로 극을 다듬기 위한 자리였다.
한 인물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다양한 등장인물들로 시선을 나눈 시립극단의 ‘베니스의 상인’은 정통에 충실하면서도 시대에 맞지않는 부분에서는 살짝 비켜섰다. 샤일록의 비극성을 부각시키는 현대 연극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종교적 편협심과 인신공격에 대해 관객들이 가질 수 있는 거부감을 줄였다.
‘상자 고르기’로 결혼에 성공한 포오셔와 밧사니오는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 제공자면서도, 경쾌한 에피소드들로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극의 무게를 덜어냈다. ‘겉보다 속이 중요하다’는 교훈은 물론이다.
‘베니스의 상인’은 ‘1파운드의 살점을 가져가되 피는 한방울도 흘려서는 안된다’는 명판결로 정의를 실현한다는 내용의 고전이다.
너무도 잘 알려진 고전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따랐던 적지않은 고민들. 한국어로 번역된 대사들을 자연스럽게 소화해 내고, 관객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긴장감을 유지하며 스토리를 끌고가기란 쉽지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풍부한 연기력과 경험을 가지고 있는 배우들과 빠른 전개로 숨가쁘게 장면들을 이어가는 연출가의 실력은 이같은 고민이 우문에 지나지 않음을 확인시켜줬다. 이제 공연일까지 남은 것은 좀더 완벽하면서도 섬세하게 다듬어내는 일이다.
상임연출가 조민철씨는 “관립극단으로서 민간극단들이 인적자원과 재정문제로 시도하기 힘든 고전을 시민들에게 선보여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며 “지난해 시립극단 작품이 다소 비극적 측면이 강해 올해는 셰익스피어의 대표적인 희극을 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언어의 연금술사’ 셰익스피어의 극에서 배우들의 몫은 중요하다. 외로운 악인 샤일록은 백민기가, 현명한 여자 포오셔는 염정숙이, 앤토니오는 안대원, 밧사니오는 소종호가 맡았다. 이부열(살레리오) 최균(에러건의 영주) 안세형(모로코의 영주) 정경림(로라) 이병옥(론슬롯, 고보) 홍지예(네릿서) 등 톡톡 튀는 조연으로 분한 연륜있는 배우들의 모습도 그대로다.
연극 ‘베니스의 상인’에서 원작의 풍미를 재현하기 위한 노력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16세기 베니스와 게토의 모습, 고딕풍의 연회복 등 화려한 소품과 의상만으로도 눈이 즐겁다.
마지막으로, 연극 ‘베니스의 상인’에 대한 해석은 극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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