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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범시인의 향수어린 책] 백록담(白鹿潭)

정지용의 뛰어난 언어구사 생생, 고서점에서 발견 노다지 만난듯

‘첫새끼를 낳노라고 암소가 몹시 혼이 났다. 얼결에 山길 百里를 돌아 西歸浦로 달어났다. 물도 마르기 전에 어미를 여힌 송아지는 움메! 움메! 울었다. 말을 보고도 登山客을 보고도 마고 매여달렸다. 우리 새끼들도 毛色이 다른 어미한틔 맡길 것을 나는 울었다.’

 

정지용(鄭芝溶, 1902~1950 北遷) 시집 「백록담」(문장사, 1941)의 책이름이 된 시 ‘백록담’ 9수 중, 제6수다.

 

내가 이 시집을 구한 것은 1952년의 봄이었다. 이미 「지용시선」(을유문화사, 1946)과 지용 「문학독본」(박문출판사, 1948)을 읽은 후였다. 전주 경원동의 고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하였을 때 나는 마치도 노다지를 만난 듯한 기쁨이었다.

 

시와 산문에 있어서 지용의 언어 구사는 가위 신품(神品)이라는 생각이었다. 어느 작품에서나 멋과 흥이 돋았다. 그 후 나는 「정지용시집」의 재판본(건설출판사, 1946)과 「산문」(동지사, 1949)도 구해 갖게 되었다. 지용의 작품집을 다 갖춘 셈이다.

 

「백록담」은 8·15 광복 후, 특제본(백양당, 1946)으로 다시 발행된 바 있다. 해금(解禁) 후 간행된 「원본 정지용시집」(깊은샘, 2003)에도 ‘백록담’은 수록되어 있다.

 

위에 인용한 시에서 ‘우리 새끼들도 모색(毛色)이 다른 어미한테 맡길 것을 나는 울었다’의 한 줄은 되짚어 읽어도 가슴이 찡하다. 지용이 이 시를 「문장」에 발표한 것은 1939년 4월이었다.

 

‘문 열자 선뜻!/먼 산이 이마에 차라’ ‘꽃 피기전 철아닌 눈에/핫옷 벗고 도로 칩고 싶어라’의 감각적 시행이 담긴 ‘춘설’(春雪)도 「백록담」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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