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효관(전남대학교 문화전문대학원 교수)
문화의 시대라는 말은 헛 수사일 뿐인가. 문화와 예술이 창조력의 발원지이며, 문화적 태도와 사고방식이 한국사회가 하청사회에서 창조사회로 진화하기 위해 필수적이라는 말들은 더 이상 낯설진 않다. 그렇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문화적 낙후의 증상을 경험하는 것은 역설적이지만 여전하다.
문화와 예술의 가치는 경제 논리 내로 완전히 포획된 듯 보인다. 문화콘텐츠가 새로운 생산력을 만들고 문화가 우리를 먹여살릴 것이라고 부쩍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단, 그 낙관적인 전망도 문화와 예술이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적 과정이 존재하고, 문화의 힘을 체험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일상의 인프라가 있을 때에나 가능한 이야기일 것이다.
문화의 시대, 콘텐츠의 시대로 이행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또 순탄하지도 않을 것이다. 문화와 경제가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사회 각 영역의 수준과 품격이 높지 않는 곳에서 문화와 경제의 대응관계는 난망하다. 특히 천민적인 경제 선동이 무차별적으로 행해지고 수용되는 곳에서 문화의 가치를 인식하는 일은 전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 사례는 적지 않다. 얼마전 방폐장 유치경쟁에서 역사문화도시를 추진한다는 경주시가 90%가 넘는 시민 지지로 선정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방폐장이 있는 도시와 역사문화도시라는 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선택한 것은 아마도 눈앞의 이익을 누군가 선동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 월드컵을 앞두고 대기업 두 곳이 벌리고 있는 ‘문화 마켓팅’은 시민들의 자발적 열기를 기업 홍보 차원으로 막무가내로 끌어들이고 있다. 아무리 기업이 시장 경쟁을 위해서는 앞뒤가리는 것이 없다고 하지만, 아무런 사회적 배려가 없는 홍보 전략을 보고 있다보면 그들이 이해하는 문화 마켓팅 수준이 참 천박하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앞으로 문화기관의 운영도 경제부처가 관리하겠다고 한다. 세계일보 3월 23일자 기사는 “기획예산처가 국내 314개 공공기관 및 공기업 전반의 경영과 지배구조에 개입할 수 있는 내용의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기본법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문화정책과 행정도 경제 부처가 관리하게 될 것이다.
지방자치단체, 기업, 정부가 모두 나서 전방위적으로 경제 선동을 일삼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 전통도, 시민들의 문화적 열망도, 문화적 공공 서비스의 필요도 오로지 눈 앞의 경제적 이익과 효율성이라는 잣대로 무력화되는 현실인 것이다. 삶의 질과 관계 회복이라는 문화의 가치는 언제나 뒷전이다.
한 후배의 홈페이지에서 봤던 사진 한 장이 생각이 난다. 애완견을 들고 돈다발을 흔들어대면서 춤을 추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있는 사진이었다. 이 어색한 조합이 우리 시대의 상징이다. 만일 이 질서가 숙명이 아니라면 지금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 또 하나의 고민의 레퍼토리가 추가된다.
/전효관(전남대학교 문화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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